검색결과
-
구미시,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역사·문화적 가치 재조명경북 구미시가 구한말 구미 출신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선다.3일 구미시에 따르면 왕산 허위(1855~1908) 선생은 임은동 출생으로 막대한 집안 재산을 처분하여 13도 창의군 군사장으로 활약했으며, 1908년 10월 서대문형무소에서 1호 사형수로 54세 순국했다.선생의 가문은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과 함께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3대 독립운동 명문가다.허위의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숭상한 영남 지역 이름 높은 학자 집안으로 허위는 구한말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한 의병대장이다. 왕산 옥사 후 허씨 일족들은 고향에서 일본의 억압에 견디지 못해 1915년 만주로 온 일족이 망명길에 올라 허위의 여러 형제 허겸.허형.허필과 그 아들들은 해외로 일가를 모두 이끌고 이주하여 뿔뿔이 항일 운동을 계속하였다. 허위 선생을 비롯해 총 9명이 독립운동 서훈(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에 서울 진공작전을 기억하는 왕산로가 행정지명으로 불리우고 있다.구미시는 올해 왕산가(家)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이다. 또 추모 공간인 경인사 사당 누각을 건립하는 등 허위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독립운동 명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보훈 문화조성에 힘쓸 예정이다. 시는 왕산기념관 옆 사당(경인사)에 내년 말까지 누각을 짓기로 했다. 시민이 참배할 수 있도록 주변 경관 및 사당과 어울리면서도 편리성을 갖춘 전통양식으로 건립한다.왕산 허위 선생 외에도 왕산가 후손들의 독립운동을 기리고 구미 독립열사를 추모하고자 왕산기념관 주변에 오태공원 조성사업도 추진하고 있다.오태공원은 임은동에 위치하며, 공원 내 왕산허위선생 집안 14인의 독립운동가 조형물을 설치한다.왕산의 정원, 기념 광장, 추모의 정원, 열사의 길 등을 조성한다.오태공원이 조성되면 많은 시민들이 독립열사들의 발자취와 숨결을 느끼고 애국의 의미에 대해 깊이 돌이켜 볼 수 있는 호국보훈의 새로운 요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왕산 허위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널리 알리며 그 가치를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2005년 왕산 허위장군의 의병정신을 기리는 '구미의병아리랑'을 작창한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배경숙)는 "허위 의병장은 악극 의병아리랑 컨텐츠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시의 관심에 큰 기대를 보였다.
-
사암리농악보존회,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 성료뒤늦게 내린 하얀눈 위에 사암리 사람들이 한마음을 모아 대보름날을 앞두고 대룡산 일원에서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잔치를 열었다.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춘천 사암리농악보존회(단장 오선주)가 주관하는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 2024’가 25일 사암리약물샘, 사암2리마을회관, 동내초등학교 3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춘천 7개 공연예술단체가 초청되어 가무악과 함께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마임, 마법 등이 펼쳐졌다. 이번 행사를 함께하는 단체는 곰지내농악(단장 김창수).땅울림(대표 최미선),동내면 Nn걸스(대표 최은영), 춘주농악(단장 이미숙),동내면 어린이농악단(단장 김효선),홍천 서면농악(단장 엄순자),춘천의병아리랑 보존회(이사장 기연옥)이다. 총 8단체가 사물놀이.농악.민요를 펼친다. 여기에 이형재 아티스트가 큰붓으로 대룡을 그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오전에는 사암리 산 중턱에서 일년내내 솟아오르는 약물샘 주위에 있는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 마을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는 고유제를 올리고 이어 약물샘에서 샘굿을 펼쳤다. 동내면 면장 박상한, 이장단협의회장 문덕기, 사암2리 이장 지찬주가 나서서 대룡산 상천제를 지내고. 이학주가 축문을 낭독했다. 반세기 동안 춘천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암리 주민인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이 대룡산샘물을 상징하는 공지어 모자를 쓰고 제사장으로 분하여 '공지어샘굿' 퍼포먼스를 통해 상천제 제문을 하늘에 올렸다. 사암리농악보존회는 공지어샘굿을 통해 퇴계와 공지어전설이 깃든 샘을 발굴하여 매년 마을사람들과 샘굿을 모티브로 여러 다양한 장르 및 문화컨첸츠를 계발해 오고 있다. 올해는 콜라보 형식을 더해 퇴계전설과 공지어전설을 주제로 한 마법 등 스토리텔링을 더한 작품이 나오고 있다. 사암리 샘굿에 전해져 내려오는 공지어전설을 알리기 위해 공지어그리기, 공지어놀이마당, 공지어이야기, 공지어마술, 공지어빵(붕어빵), 강아지서당 등 여러 장르에서 보여준 다양한 컨텐츠에서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공지어전설에 대해서 오선주 단장은 "퇴계 이황이 춘천시 퇴계동에서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하루는 강아지가 들어오더니 가르침을 경청하였다. 퇴계는 기특하여 끼니때마다 자기밥의 반을 덜어서 강아지에게 주었다. 반찬도 덜어서, 그렇게 3년이 지나자 강아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며칠후 웬 젊은 초립동이 찾아와서 큰 절을 하고 나서 공손하게 "저는 용왕의 아들입니다. 선생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하여 퇴계는 용궁에 초대되어 대접을 받고 나오는데 용왕이 짚 한오라기를 주며 머리부분부터 조금씩 잘라서 반찬으로 들라고 한다. 이후에 잘라보니 용궁에서 먹던 진미 중의 고기였다. 오래 두고 먹다보니 지푸라기 끝만 남게 되어 개울물에 넣었더니 수많은 고기로 변하였다. 이후에 공지어로 부리면서 개울 이름이 공지천이라고 불려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퇴계 선생에게 공부를 하는 용왕의 아들을 상징하는 강아지를 기억하기 위해 '강아지서당'도 꾸며졌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학부형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특히 예로부터 사암리 약물샘은 피부병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여, 먼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물할미샘’으로 유명하다. 사암리농악보존회는 동내면의 지역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화컨텐츠를 찾아내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놀이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의 대미를 보여준 작품은 ‘대룡산 샘물 합수굿’을 통해 마을공동체 공존을 넘어 '상생'의 의미를 더했다. 춘천의 젖줄기 공지천의 발원인 사암리 약물샘과 고은리약수 등 대룡산의 샘물을 모두 모아 ‘대룡산 샘물 합수굿’을 선보였다. 동내면 5개리(사암리, 거두리, 고은리, 신촌리, 학곡리)가 만나는 합수굿이 행사의 의미를 더욱 고조시켰다. 함께한 5개 지역 주민들이 큰 의미있는 행사라고 하면서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손을 맞잡았다. 춘천에서 유일한 어린이농악대가 나와서 높은 기량을 펼쳤다. 동내면 어린이농악단(단장 김효선)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명이 깃든 기예를 보여주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오선주 단장은 "사암리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중국 조선족 농악무’의 근간이다. 1927년 조선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사암리 10여호 농만들이 중국 계관향 영벽라자에 이주하여 농악대를 조직하였다. 이 첫 농악대의 근본이 오늘날 중국 '조선족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다. 2016년 사암리농악 보존회 창단공연때 왕청현농악단 김명춘 '조선족농악무' 예능보유자를 초청을 했다. 올해에는 사암리농악단이 초청을 받아서 주민들과 함께 가보려고 한다. 사암리 마을 사람들은 춘천의 자부심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년에 이어 ‘ON-다’사업에 선정 된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는 동내면의 주민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동내면 박상헌 면장은 "공지어전설이 깃든 사암리약물샘은 마을공동체 구축과 춘천을 알리는 중요한 장소이다. 앞으로 이러한 상징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사암리농악보본회가 주최하는 대보름날 행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겠다"라고 전했다.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사암리농악보존회가 '대룡산 대보름놀이'에서 컨텐츠 계발로 매년 만들어지고 있는 공지어전설을 주제로 한 '대동놀이' 행사가 기다려진다.
-
1일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에서 의병정신 기린다."피고, 허위! 죄인이 감히, 대일본제국에게 저지른 불경한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겠다. 1896년 의병을 모아 대일본제국을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907년부터 ‘연합의병창의군’이라는 불순단체를 결성해 대일본제국에 총과 칼을 겨누어 많은 죄를 저지른 대역죄인이다 피고,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입니까?"(일본 재판관)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왕산 허위) 대일항쟁기 구미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의병장의 뜨거운 의병운동이 소리극으로 부활된다. 그가 돌아와서 의병들과 함께 '의병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서울로 진격한다. 진격!! 1일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주최 주관으로 개최되는 제15회 구미의병아리랑제가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오후 2시에 개최된다. 배경숙 예술감독의 연출로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가 무대에 오른다. 1부에서는 '저항의 노래', 2부에서는 '승리의 노래'로 구성되어, 의병정신이 발현되는 과정과 영남인의 심성이 담긴 영남전래민요집에서 채록된 영남의 민요와 아리랑이 극의 단막과 어울어져 허위장군의 붉은 애국심을 펼친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하여 서울 진격작전을 지휘했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는 서대문형무소 첫 번째 사형수로 1908년 10월 21일 정오, 경성감옥의 교수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왕산의 나이 54세였다. 교수대에서 일본 헌병사령관도 그의 당당한 기개에 고개를 숙였다고 알려졌다. 소리극에서 허위 장군의 13년 의병투쟁을 구미의병아리랑에 담아서 허위장군의 의병정신을 기린다. 왕산의병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야(후렴) 1.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나셨다 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2.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 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대장군 3.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 서시니 경술년 30조 호령이다 4.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 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하여라 5. 역사는 기린다 왕산허위장군 산하가 외친다 너는 아냐고 6. 13도 넘어서 이역 만주 땅까지 창의하여 거병하니 세상이 들썩 극중 등장인물은 허위, 허훈, 허경, 이기찬, 아카시(일본 헌병사령관) 5인과 보존회 30여 명이 민중들로 나와서 구미의병아리랑, 구미아리랑, 영남민요 10여 곡을 소리극으로 올린다. 한편 올해 왕산 허위 선생 115주년 추모제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5일 광복절에는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서울 왕산로, 남인사마당, 광화문,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차례로 순회하면서 '아리랑버스킹' 공연에서 왕산허위 장군을 기리는 '왕산의병아리랑'을 널리 알렸다. 임규익 회장은 내년에도 왕산로와 광화문 광장에서 왕산의병아리랑을 알리겠다고 전했다. 특히 사할린 동포 인무학 교수(모스크바 대학)에 의하면 "왕산 허위 손자 허진 선생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면서, 허위 장군의 의병활동을 고려인들에게도 널리 알렸다. 당시 많은 의병들이 서울 진격 작전을 실패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했다."라고 전한다. 당시 유관순 의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허위 의병장은 구미에서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와 자손들이 국외로 이주하여서, 의병활동 중에 이름도 없이 산화한 의병들의 존재 기록이 아직도 파악이 안되고 있다. 의병운동의 자취를 발굴하고 복원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본다. 구미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얼씨구 노다가세 노다가(후렴) 금오산 참꽃은 다시 또 피련마는/나를 버리고 가신님은 언제나 오려나 왕산의 충절과 용맹의 기상은/내 고향 구미의 자랑이라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는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는 허위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
13회 왕십리아리랑제, 제주아리랑부터 사할린아리랑까지지난 3일 왕십리아리랑보존회가 주최주관하는 제13회 왕십리아리랑제가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6월 보훈의 날을 맞이하여 보훈 가족 50여 명과 성동구민 등 300여 명이 객석을 채워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45명이 무대에 오른 이번 공연은 1부 이산의 노래, 2부 해원의 노래, 3부 상생의 노래로 구성되어 7개 지역 아리랑과 경기민요, 전통춤으로 구성되었다. 특별출연으로 김명남 명창이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선사했다. '왕십리아리랑'은 순수 창작곡이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장 이혜솔 명창이 작사하고, 양금 연주자 윤은화가 작곡했다.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한양도성 동쪽 십리 응봉산 정기. 세세년년 우리 삶터 희망의 샘터. 살곶이벌 응봉기슭 응방의 옛터. 역사문화 오래오랜 우리의 터전. 인류유산 아리랑은 우리의 자랑. 슬기로운 매사냥도 인류유산이래요." 첫 막은 '왕십리아리랑으로 열었다. 1부에서 '이산의 노래' 사할린아리랑은 소극으로 엮어내어 대일항쟁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가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당하는 고난과 슬픔을 아리랑에 담아낸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 하였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 그 땅에 못가고 내 여기 사나 우리 영감님은 어데로 갔나 나만 혼자 두고 자기만 갔네 강제징용의 땅 사할린에서 한인 1세대들이 고국을 그리며 부르는 망향의 노래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3연은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땅으로 이중징용 가는 대목이다. 우리님 따라서 사할린에 왔는데, 다시 나만 혼자 두고 일본 해저 탄광으로 끌려가는 이산의 고난을 고하고 있다. 2부 '해원의 노래'에서는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회장과 박옥희가 제주아리랑을 선보였다. 이때 제주해녀의 복장을 한 장경숙(제주아리랑연구회장)의 제주 해녀의 고난과 역경을 몸짓으로 표현하며 제주아리랑을 함께 불러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내었다. 이어 김용자, 최순이, 박연춘이 상주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불러서 신명과 흥을 돋구웠다. 관객들이 후렴을 따라서 부르면서 손뼉을 치고 발을 굴리면서 추림새를 던져주었다. 얼쑤, 좋다! 3부 '상생의 노래'에서는 대일항쟁기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호국선열을 추모하는 의미로 만든 '아무르아리랑'이 소극으로 펼쳐져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무르아리랑 넘어간다.(후렴) 원수하고는 같은 하늘아래 살수가 없어, 팔걷고 뛰어나와 의병되었네, 동양평화 하자하자 외치는 소리 하늘땅 온세상 진동하누나 다섯발 내디뎌 도적 쓰러지니동양평화 대역사 시작되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아무르아리랑) 이 아리랑은 이혜솔 회장이 2018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열리는 안둥근의사추모제에 한국대표로 초청되어 헌정한 의병아리랑이다. 국내 거주하고 있는 광주 고려인문화원 및 고려인합창단,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이 사는 인천, 김포, 양주 등에서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알려오고 있는 의병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오고 있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소극으로 만들어서 무대화 하여 레파토리화 하고 있다. 성동구 거주하는 한 보훈가족(75세)은 "보훈의 날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주는 '아무르아리랑'이 가슴에 와 닿는다. 주말이라서 마침 손자들과 같이 와서 더욱 의미가 깊다. 감사하다"라고 이회장의 손을 두손으로 잡아주었다. 휘날레가 끝났는데도 관객들이 계속해서 '앵콜'을 외쳐 주었다. 주말이라서 가족과 함께 온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전국아리랑공연연합회에서 축시를 보냈다. "우리 왕십리아리랑은 아리랑은 역사와 민족을 노래한다. 아리랑은 우리가 사는 땅을 노래한다. 왕십리아리랑은 서울의 역사를 노래한다 왕십리아리랑이 탄생한지 5년 이제 ‘아리랑의 아리랑’으로 자리한다 왕십리아리랑은 오늘의 우리 아리랑이다 구아리랑 긴아리랑 본조아리랑 정선아리랑 왕십리아리랑은 서울의 아리랑이다 이혜솔과 그들은 왕십리아리랑 전승자들이다 발표회를 하고 축제를 펼친다 제주도에서 정선까지 또 사할린까지 동포들과 외국 손님들과 우리들과 함께한다 아리랑의 역사를 아리랑의 위상을 아리랑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막내 아리랑이다"
-
6월 1일 ‘의병의 날’, “反義兵을 아십니까?”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의병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의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2010년 행정안전부가 제정하였다. 의병(義兵)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자위군으로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民軍)이다. 의병의 창의는 향토와 동족의 방어를 위한 것이며, 나아가 일본의 야만성에 대한 민족 감정의 발로였다. 결국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자 민족적 저항운동으로 일어난 것이 의병의 창의다. 그래서 승패를 가리지 않고 죽음을 결심하고 과감히 전투하는 것을 본분이라 여겼다. 박은식(朴殷植)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의병전투는 한말 의병으로, 1895∼1896년의 제1차 의병전쟁(을미의병)과 1905∼1910년의 제2차 의병전쟁(을사의병과 丁정미의병)이다. 이 중 제2차 의병전은 다시 의사의병과 정미의병으로 나누는데, 정미의병은 역사상 마지막 의병전쟁이란 점과 강원도 춘천의병이 중심이란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의병운동이 가장 치열하던 시기인 1908년을 예로 들면, 강원의병은 전국 13도 의병 중 참여 의병수·순국자·빼앗긴 총수·일본군 사상자 수 등 의병활동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 지표에서 전국 순위를 기록했다.(대동공보, 1909년 3월 14일) 춘천 정미의병은 1907년 7월 태동하여 확산되고, 1908년 들어 가장 강력했고, 1909년 들어 퇴조했다. 이 춘천 정미의병에 대해서 일제는 이런 대응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1907년 6월경 강원도관찰부를 방비하고 춘천의병의 재봉기를 막고자 춘천에 경무고문부 춘천지점을 설치하여 경시(警視-경찰서장급)1명, 경부(警部)5명, 고문의(顧問醫)5명, 순사 101명을 배치하였다.”(만세보, ‘경무고문부 춘천지점’, 1907년 6월 12일) 고종퇴위ㆍ정미조약ㆍ군대해산과 같은 일제침략에 반발한 춘천민의 항일의식의 폭발과 국권수호를 위해 분투중인 고종세력의 의병추동 활동이었다. 1907년 8-9월 두 달간 지속된 춘천 정미의병의 확산기에는 유생 신분으로 농사를 업으로 삼던 인찬옥은 1907년 7월 서울에서 내려온 고종세력의 수하 김제현의 창의활동에 고무되어 창의의 깃발을 들었다. 그는 춘천 사내면에서 창의하여 소모활동을 펼치다가 7월 말경 춘천경무고문 지부에 포착되어 황기운(黃奇雲)·한병이(韓炳伊)와 함께 춘천군 경무서에 수감되었다. 인찬옥의 수감 이후 보름 정도 지난 8월 중순경부터 춘천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본격화되었다.(1908년 8월 1일, 황성신문) 1907년 9월 한 달간 춘천의병은 춘천읍을 에워싸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강원도관찰부로의 진격을 시도했다. 특히 의병들이 춘천읍내로의 진격을 성언한 것은 9월 20일 전후였다. 그 당시 화천에 집결한 의병들이 홍천군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인 후 일부는 화천으로 퇴각하고 일부는 타처에 집결하였는데, 이들은 춘천을 포위 습격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강원도 각처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점차 춘천으로 모여들어 춘천을 포위하려는 형국을 이루자 춘천수비대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였다. 나아가 정미 춘천의병 중 2-300백 명의 포군을 포함하여 군사수가 700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부대를 이룬 의병진도 춘천읍을 습격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 의진은 모두 상하의 흑색의 복장을 갖춰 입고 배낭을 메고 일본군을 만나면 교전하지 않고 의병을 규합할 뿐이며, 척후를 사방에 보내 일본군의 기습을 방비하고, 행진 때나 유진 때에 군율이 엄격하였다. 이를 보면 이 의진은 춘천 정미의병진 중에서 군사수나 규율과 훈련이 가장 엄하고 장비가 가장 우수했던 부대로 보이는데, 이러한 부대의 최종 목표는 춘천읍을 습격하는 것이었다.(대한매일신보, ‘의병소식’, 1908년 9월 20일) 춘천 정미의병은 1907년 7월 일어나 약 1년간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춘천 의병활동의 특징은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가 발표한 논문 ‘춘천지역의 정미의병운동’(의암학연구 제19집)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1907년 7월 고종퇴위ㆍ군대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이는 단발령 이후 춘천에서 봉기한 을미의병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다른 지역 의병에 비해 늦게 일어났지만 짧고 굵게 활동하였다. 둘째, 다른 지역 의병들처럼 서울의 근왕세력과 춘천의 재야세력 들의 연합으로 일어났다. 셋째, 신분의 벽을 극복한 의병이었다. 유홍석ㆍ최천유ㆍ박선명ㆍ지용기ㆍ인찬옥ㆍ김정삼 등이다. 이중 유와 인을 빼면, 모두 양반이 아니었다. 이들은 평민층의 의병참여를 촉진하여 의병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넷째, 춘천의병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일본의 군대와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또 이들은 친일파와 일본인들을 죽이고, 시설을 파괴하고, 관청을 습격하였다. 이는 일본의 한국통치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은 춘천의병을 강하게 진압하였다. 다섯째, 춘천의병은 강원관찰부 점령을 최종목표로 삼았다. 춘천의병은 1907년 9월 한 달간 춘천을 사방에서 포위하였다. 이 시기 상황은 1907년 9월 24일 의병선유사에게 순종이 ”지방이 불온한 가운데 강원도가 가장 심하다 하니 속히 출발하여 가가호호 설유하여 일반 적자(赤子)들로 하여금 생업을 안돈하도록 하라.”는 칙교를 내릴 정도였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정미의병전에서 춘천의병은 뚜렸한 목표를 갖고 강력하게 항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만큼 일제의 거센 무력동원이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춘천 정미의병전이 일제의 강한 통제 하에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료가 발굴되었다. (사)아리랑연합회가 ‘의병아리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1908년 2월 춘천 부내면에서 산출된 ‘수비대 잔유 청원서’이다. 이때 수비대는 1907년 9월에 강원관찰부에 파병되어 5개월 만에 철수 하게 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기간은 유생 신분으로 농사를 업으로 삼던 인찬옥이 1907년 7월 서울에서 내려온 고종세력의 수하 김제현의 창의활동에 고무되어 창의의 깃발을 들었다. 그는 사내면에서 창의하여 소모활동을 펼치다가 7월 말경 춘천 경무 지부에 포착되어 황기운(黃奇雲)·한병이(韓炳伊)와 함께 춘천군 경무서에 수감되었다. 인찬옥의 수감 이후 보름 정도 지난 8월 중순경부터 춘천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본격화 되었다.(대한매일신보, 의병소식, 1908년 8월 1일) 이 때 부내면 면장은 물론 11개 리 이장들이 수비대장에게 철수하지 말고 더 머물러 달라는 청원을 한 것이다. 이 자료가 춘천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실제 수비대에 전달, 접수되었는지 여부는 단정할 수가 없으나, 의병에 반하는 활동임으로 ‘반의병’자료인 것이다. ‘반의병’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정도로 볼 수 있다. 즉, 선유조칙 낭독, 의병 해산과 귀순 권유, 고시문 게시, 자위단 창설 지원, 의병 동태 파악 보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상하 갈등 조장, 등을 말 한다. 이 중 면장과 이장 연명의 수비대 잔유 청원 행위는 이들 행위보다는 더 적극적인 반의병 활동이다. 춘천군의 부내면은 강원관찰부가 소재한 곳으로 이후 춘천면→ 춘천읍→ 춘천부→춘천시로 변천한 중심부이다. 당시 서명과 수결한 11개 리(里)는 허문리 사창리 대판리 가연리 위동리 낙사원 보안리 후평리 수동리 전평리 죽전리이다. 이들 이장 11명 외 10명이 연명하여 청원하였다. 청원서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수비대(守備隊)의 중대장(中隊長) 공과 소대장(小隊長)공과 특무정교(特務正校)공 세 분께 청원합니다. 이곳에 부임한 이후로 폭도가 그치고 백성들이 편안히 쉬오며, 기율(紀律)을 더욱 엄히 하여 털끝만큼도 침범함이 없었습니다. 통역하는 권응두씨도 총명하고 슬기로운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 역관의 소임을 이리저리 고심하여 안심시키기를 옛날과 같이 하였습니다. 이에 도내(道內) 생민들이 의지하기를 장성(長城)같이 하였는데, 이번에 거두어 돌아간다는 경우(境遇)에 이르렀사오니, 슬프고 허전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일제히 호소하오니 민정을 굽어 살피셔서 계속하여 머물러서 촌마을이 평온하고 폭도가 없어지게 하심을 엎드려 바랍니다. 1908년 2월 9일 수비대대장 각하” 약 7개월 동안 주재한 수비대에게 "폭도가 그치고 백성들이 편안히 쉬오며, 기율(紀律)을 더욱 엄히 하여 털끝만큼도 침범함이” 없었으니 철수를 하지 말고 "도내(道內) 생민들이 의지하기를 장성(長城)” 같으니 계속 지켜 달라는 청원이다. 물론 이런 투는 유가적(儒家的)인 겸사(謙辭)일 뿐이라고 쳐도 "일제히 호소하오니 민정을 굽어 살피셔서 계속하여 머물러 ” 달라는 것은 귀와 눈을 감고하는 반의병 활동의 극치이다. 이는 그만큼 수비대가 철저하고 완벽하게 장악한 반증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청원의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춘천의병 연구 논문 등에 부내면 상황은 "의병의 습격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였다며 서·남·북 세 방면에서 강원도관찰부를 포위하는 형세를 이루기는 했지만 끝내 점령하지는 못하였다. 1907년 8월 강원도관찰부에는 수비대 1개 소대, 경찰관리 17명이 배치되어 있어서 무력이 약한 의병이 직접 공격하여 관찰부를 점령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편 자료에 의하면 수비대의 일본인은 ‘춘천수비대의 켄다(謙田 또는 가마다) 대위’, ‘시마다(島田) 경시’, ‘수비대 이와모토(岩本) 소위’, ‘후지이(藤井) 소위’, ‘가와이(河合) 소위’가 보이나 청원서의 구체적인 중대장, 소대장, 특무정교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춘천수비대”의 켄다(謙田) 대위와 "보좌관 시마다(島田) 경시는 춘천수비대장과 협력하여 부하를 지휘해 순사 24명과 경무관 총순, 순검 등 15명을 주야로 근무하게 하고~”(위의 논문)라는 기록으로 또 가장 많은 출현 빈도를 보이는 가와이(河合) 소위가 세 직위 중의 인물들로 추측된다. 이 자료를 공개한 (사)아리랑연합회는 "이런 자료를 통해 일제의 병탄이 얼마나 철저하게 진행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차원에서 연구 자료로 제공하려 한다.”고 밝혔다. (사)아리랑연합회는 춘천의병아리랑, 문경의병아리랑, 구미의병아리랑 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있다.
-
금강사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 아리랑 얼쑤!천주평화연합 주최,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가 19일 오전 경북 풍기에 위치한 금강사에서 개최했다. 대한불교도법황종 금강사와 (사)한국종교협의회 등이 함께 아리랑 한마당을 통해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현영 UPF 한국회장, 대한불교조계종 팔공총림 방장 임담의현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종정 혜경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총무원장 도봉스님, 전법주사 노형 대종사, 대한노인회 김동진 상임이사, 세계불교도연합 총재 도룡국사, 박성만 경상북도의회 의원, 김주영 영주시의회 의원을 비롯하여 UPF의 평화대사, 평화운동가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또한 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도 참석했다. 행사를 주관한 UPF는 UN경제사회이사회 ‘포괄적 협의 지위’를 가진 글로벌 NGO로써 국내에서는 17개 광역시도 및 232개 시군구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신통일아리랑’에서 펼쳐진 아리랑은 6월 1일 ‘의병의 날’과 7월 27일 정전 70주년을 의미화 한 의병아리랑을 중심에 배치하고 7개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전승하는 토속아리랑을 함께했다. 경상도 지역 '대구아리랑'에서부터 사할린에서 불렸던 '사할린아리랑'까지 7지역 단체에서 12종의 아리랑을 선보였다. 첫 무대는 경산아리랑보존회가 준비한 산뜻한 ‘화전놀이아리랑’으로 열고, 휘날레는 탁월한 보편성을 지닌 '본조아리랑' 대합창으로 여몄다. 2006년 창립한 경산아리랑보존회(이사장:배경숙)은 경산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경산아리랑체와 경산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지역 구전민요와 함께 경산아리랑을 스토링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극은 전통에 무게를 실은 무대화를 통해 현대적 계승에 힘쓰고 있다. 2003년 창립한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이사장:곽동현)는 2003년부터 매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대구아리랑제(통상20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영남 지역에 25개 지부와 함께 영남아리랑축제 및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상 20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2년 창립한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기연옥)은 기우만 의병장 직손으로서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을 기리는 '윤희순의병아리랑' 등을 소극과 뮤직컬로 무대화 하여 국내외 순회공연을 통해 널리 알리고 있다. 2019년 서울아리랑패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창립한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전은석)는 영천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영천아리랑제와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산10회)를 개최하고 있다. 일년에 100여 차례 경로당 위문공연을 해오고 있다.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임규익)은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 허위 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2016년 창립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사장: 이혜솔)는 경기서울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 아무르아리랑, 아리랑코로나, 연꽃아리랑 등을 스토링텔링 작업을 통한 무대화에 힘쓰고 있다. 사할린아리랑보존회 지도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2020년 창립한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는 휘날레에서 본조아리랑을 선창했다. 6월 25일 동두천아리랑제를 열 예정이다. (사)아리랑연합회는 이번 금강사에서 펼친 아리랑 한마당을 시작으로 신통일한국을 추동하는 힘의 노래가 아리랑임을 다양한 곳에서 전개하기로 하였다.
-
100년 전 의암선생 의병정신 기리는 기연옥 ·손승철씨 의암대상 수상제24회 의암대상 시상식이 12일 춘천 남면 의암류인석유적지에서 개최,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학술부문)와 기연옥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이사장(공로부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들에게는 상패와 상금 각 1000만원이 전달됐다. 기연옥 이사장은 "13도 전국 의병장들을 호령하신 의암 유인석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많은 분들이 의병아리랑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다”고 했다. 구한말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 의병장의 후손인 그는 "가족 전체가 고향을 떠나 험난한 길을 겪어 온 선친을 보며 의암 선생과 같은 타국에서 독립운동 핵심 리더로서의 선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더욱 상기되는 날”이라며 "앞으로도 음반 제작과 공연 등으로 의암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기 이사장은 국내외 동포들에게 각종 의병아리랑 순회공연을 통해 의병정신을 널리 알려오고 있다. 각지에 산재된 의병가 발굴 등을 하며 의병의 역사적 위상과 가치를 알리고 독립운동 선양에 노력해 왔다. 손승철 교수는 "의암 선생께서 순국하신지 이미 1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현대적 의미가 지대하다.의암사상은 출발은 척왜척양이지만 서양 문물의 선택적 수용과 더불어 궁극적으로는 한·중·일 3국의 연대가 필요하며, 그 중심에는 동양사상의 한국이 있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여전히 그의 사상은 계승 발전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손 교수는 의암 사상의 핵심저술인 ‘의암집(우주문답)’의 최초번역자로 2권의 번역서와 관련 논분 5편을 저술했다. 강원의병사연구회를 조직해 의병관련 학술사업에도 기여했다. 김진태 도지사의 축사를 대독한 현금서 도문화유산과장은 "의암 선생의 높은 기상을 기리는 일에 앞장서 온 수상자들께 감사 드린다”며 "쏟아온 열정과 정성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높이고 미래를 밝힌다”고 했다.
-
(45) 아도위, 춘천의병아리랑을 찾아가다이만유/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지난해 밀양아리랑답사에 이어 춘천의병아리랑답사를 목적으로 오전 8시 문경에서 출발하여 4시간 만에 춘천에 도착했다. 의병의 고장 춘천에는 ‘대한 13도의군도총재 의암(毅菴) 류인석(柳麟錫)’의 출생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 ‘춘천의 잔 다르크 윤희순(尹熙順) 의사’가 몸 바쳐 의병 활동을 한 곳이다. 의병사에 빛나는 문경 출신 운강 이강년 의병장과 의암 류인석 선생과는 스승과 제자로서 화서학파의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을 계승하여 존화양이(尊華攘夷)와 일통대의(一統大義)를 핵심으로 충(忠)과 의(義)를 강조하며 항일 의병전쟁을 함께 수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 의병을 주제로 한 아리랑이 공식적 기록으로 ‘춘천의병아리랑’과 ‘문경의병아리랑’ 둘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문경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곳이 춘천이다. 춘천 탐방 목적은 류인석 의병장의 사상과 업적을 살펴보고 의병 활동에서 불린 ‘춘천의병아리랑’을 듣고 배우면서 아울러 여성들의 의병 활동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작사 작곡한 윤희순 여성 의병장의 ‘안사람 의병가’도 알아보면서 ‘아리랑도시 문경’과 우리 ‘문경새재아리랑’을 알리기 위해서 먼 길을 찾아간 것이다. 지난 5일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위원장: 이만유) 소속 위원 15명은 ‘춘천의병아리랑’을 찾아 길을 나섰다. 전국 아리랑전승지역을 찾아서 진도아리랑답사, 정선아리랑답사, 밀양아리랑답사를 수행하고 춘천아리랑을 찾아서 온 것이다. 고봉 기대승의 17대 직손인 (주)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이사의 추천으로 만난 기연옥 회장은 의병장 기우만의 고손녀로 의병의 후손이다. 집안 조상과 지역 의병들이 구국 활동을 벌이던 중 불렀던 '춘천의병아리랑'을 발굴하여 의병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설립된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의 기연옥 이사장과 사전 협의를 거쳐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비를 들여 자비로 건립한 ‘춘천의병아리랑전수관’ 건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도착하자 마자 전면에 ‘환영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고 회원들이 마중 나와 반갑게 우리를 맞으며 환영해 주셨다. 상견례를 나누고 양 단체장 인사말로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어서 서로 준비한 아리랑 악보가 적힌 유인물을 배부하고 ‘춘천의병아리랑, ‘뗏목아리랑’ 공연과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리고 난 뒤 기연옥 명창의 지도 아래 춘천지역 아리랑을 배웠으며 이어서 이만유 위원장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인 ‘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와 보급 전승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며 그 후 함수호 단장의 장구 장단에 맞춰 아도위 합창단이 ‘문경새재아리랑’과 우리가 창작한‘코로나아리랑’‘풍년아리랑’등을 불렀다. 두 단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오래 사귄 친구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노래 부르다가 일정에 쫓겨 마지막으로 정을 담은 지역특산물을 선물로 주고받았으며, 앞으로 두 단체는 이번 아리랑으로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로 약속하고 전수관 앞에서 포옹으로 아쉬운 작별을 나누게 되었다. 이날 의병 정신과 의병아리랑을 깊이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 ‘의암류인석기념관’을 방문, 김성진 학예연구사의 해설을 들으며 관람하였고, 춘천의 명소 ‘남이섬’을 들려 메타세쿼이아 숲길에서 만추의 정취를 느끼며 즐겁고 유익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다.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는 2017년 창립 후 ‘찾아가는 아리랑학교’운영, ‘서울아리랑페스티벌’참가 등 대내외적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의 보급과 전승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폈으며 위원들의 견문을 넓히고 자질향상을 위한 국내 유명 아리랑 발생지인 정선, 진도, 밀양아리랑을 답사한 바 있다. 이번 춘천 탐방을 마치며 아직은 여건상 실현하지 못한 디아스포라 이산의 아픔이 있는 사할린 등 해외 동포들을 찾아가 아픔과 희망을 함께 노래하며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목청껏 부를 날을 기약해 본다.
-
[리뷰] 24년 동안 공주에서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공주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는 제24회 공주아리랑제가 지난달 27일 공주하숙마을에서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주제는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이다 제1부는 공주의 전래민요와 토속아리랑, 2부는 창작아리랑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 은개골아리랑, 3부는 의병아리랑인 우금티아리랑, 휘날레로 진행되었다. 오프닝 공연으로 '다듬이 연주+공주아리랑'(김계화)이 막을 열었다. 이어서 공주에서 전래되는 토속민요 '산아지타령', 토속아리랑인 공주아리랑(남은혜 외 15인)이 공주의 정취와 공주민의 심상을 전해주었다. 도라지타령과 공주군밤타령 (서민호,박고운,박세아,장다은,김나림,지유리,안수지)으로 신명을 높였다. 2부에서는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남은혜), 태평가,밀양아리랑(전수경 외 15인), 김죽파류'가야금산조' (안은정), 3부에서는 공주아리랑,은개골아리랑 (서민호 외 9인),우금티아리랑(공주의병아리랑),해주아리랑(전수경,박순복,허경자)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남은혜,김계화), 휘날레로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어 아리랑 대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반주에는 피리(조성환), 장구(김영덕),가야금(안은정)이 함께 했다. 공주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공주민요와 공주아리랑을 면면히 계승 발전시켜 온 공주아리랑보존회는 매년 3월 1일 삼일절에 공주아리랑제가 정례화 되어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줄확산으로 8월에서야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남은혜 회장은 "올해 벌써 24돐이나 되는 아리랑제와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10월에 개최되는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통해 전국 아리랑 소리꾼과 국악인들에게는 공주아리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공주아리랑이 공주 시민들에게 애창하는 고향의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남은혜 명창은 2011년부터 우즈벡에서 개최된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기념 세계아리랑실크로드축제(단장:권오성 교수)에서부터 사할린아리랑제에서 '공주아리랑'과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치르치크아리랑'을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오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중앙아시아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을 알려오다가 키르키르탄 동포사회에서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축제에서 초청공연을 매년 정기적으로 정례화 해오고 있다. 남명창은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 중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2003년 공주아리랑보존회를 창립하였고, 충남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특히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북간도아리랑'과 '치르치크아리랑'은 중국과 러시아 동포들이 애창하고 있는 아리랑이다. 그동안 회원들과 갈고 닦은 토속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을 배합하여 소리극으로 발표한 2019년 '유관순아리랑'에서 불린 의병아리랑, 우금치아리랑, 유관순의사아리랑이 주목을 받고 있다.
-
14일 의병정신 기리는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2022년 경상북도 선정 공연지원사업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가 14일 구미강동문화복지회관 천생아트홀과 24일 대구 어울아트센터 함지홀에서 전석 무료공연으로 막이 오른다. 구미시가 주최하고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구미시에서 매년 주관하는 제14회 '구미의병아리랑제'의 일환으로 '왕산 허위'의 의병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창작 소리극이다. 행사의 취지와 목적은 구한말 대표적인 의병장이자,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 왕산 허위선생의 구국헌신을 통해 이룩한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하고, 허위선생과 함께 이름없이 스러져간 의병들의 의병활동을 전국에 알리려는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왕산 허위의 의병활동과 함께 구미에 설립된 '왕산허위기념관'과 대구지역 달성공원 내 소재한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왕산 허위’ 의병장의 존재와 허훈·허겸·허위 3형제가 구국운동에 나서는 의로운 봉기를 기리기 위해,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가 창작 아리랑 '구미의병아리랑'을 통해 부각된다. 국권 회복에 투신한 일가족의 희생과 활약상이 제시된다. 줄거리는 허위선생의 업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허위는 형제 중 포부와 경륜이 남달랐다. 허위는 김산에서 거의하여 뜨거운 의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1896년 4월 7일 충청북도 진천에서 ‘의병을 급속히 해산하라’는 국왕의 봉서를 받는다. 이에 허위는 "호남 3월에 오얏꽃 날리는데/ 보국하려던 서생이 철갑을 벗는다/ 산새는 시국 급할 줄은 모르고/ 밤새도록 나를 불러 불여귀(不如歸)라 하네.”라고 통분한다. 이러한 허위의 의병정신의 혼을 아리랑 선율에 담았다. 구미의병아리랑(작사 작창:배경숙)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야/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요(후렴)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 나셨다/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 대장군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서시니 경술년 30조호령이다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 하여라 1904년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조인되고, 일제의 침략 야욕이 드러나자 전국에 ‘배일통문’을 돌려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고 전국민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또 친일매국단체인 일진회가 조직되자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며 이듬해 3월 일제의 압력으로 4개월 동안 헌병사령부에 구금되었다 강제로 귀항 조치를 당했다. 1907년 9월 경기도 연천, 적성, 철원 등지를 무대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친일매국분자를 소탕하는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국 각지의 의병 1만여 명이 모여 '13도 연합의병창의군'(13道聯合義兵倡義軍)을 결성하였다. 1908년 12월 전국 의병장들의 통합 의병 부대인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 군사장(軍師將)을 맡았다. 1908년 5월 통감부에 30여 개의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투쟁하던 중 6월 11일 경기도 포천에서 체포되어 9월 18일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21일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외세에 대항한 구국항쟁을 펼친 위대한 삶이었다. 임규익 회장은 "이번, 구미 지역 정신문화를 계승하는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는 구미와 대구 지역을 순회하는 2회 공연으로 마련하였다. 왕산 선생의 숭고한 애족정신과 가족과 후손들의 만주 항일투쟁의 이야기 일부를 창작 민요극에 담아내려고 한다." 이어 "예와 충절의 상징인 금오산의 인문정신은 인류무형문화유산 '구미아리랑'에 담았고 창의군의 외침과 왕산의 호령을 창의가 '왕산의병아리랑'에 담았다"라고 전했다. 영남민요의 실기와 이론을 전공한 배경숙 예술감독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의병정신을 기리고자 구미의 허위 의병장의 의병활동을 재조명하고자 마련한 소리극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당시 의병은 왜구의 총칼에 죽으면서 "우리는 외적으로부터도 적이고, 조국으로부터도 적이었다고" 울부짖으며 스러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어느 시대에서든 외세에 대항하여 가족과 나라를 지키려는 의병은 전국에서 불같이 일어나 봉기했다. 말 그대로 ‘의로운 군인’(義兵), 의병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특히 구미 선산 칠곡지역에는 이름없이 죽어간 의병들이 많다. 이러한 숭고한 의병정신을 의병아리랑의 사설에 담아서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리극을 통해 의병정신을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영남지역에서 전래되어 오고 있는 방아타령,맷돌질소리,물레소리,나물노래 등의 영남민요가 여느 지역 민요하고는 다르다. 영남조로 내지르는 투박미와 억양의 야생성이 이채롭다. 특히 당시 민중의 한과 생활상을 전통소품인 지게와 목발, 절구, 물레, 맷돌, 꽃상여 등을 통해 재현하는 무대는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총괄기획에는 김강수. 작·연출에는 김필범이 맡았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14일과 24일 구미 왕산허위기념관 탐방과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 공연 관람을 위한 단체 신청이 20명까지 모집을 한다. 문의처는 070-4447-4362이다.
-
북치고, 장고치고, 소리하는 월곡리 얼쑤!(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회장이 춘천 시내 연습실을 청산하고, 북면 월곡리에 전수관를 건립, 개관한지 1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가졌다. 오전 11시부터 12시 까지 전수관에서 개최한 기념공연 ‘국악한마당’이다. 보존회 회원들과 월곡리 안중현 이장과 함께 주민 50여명이 함께하였다. 참가한 주민들은 사실은 이 전수관에서 북 치고, 장고 치고, 소리하는 회원들이기도 하다. 기연옥 회장은 "보존회 회원들을 통한 의병아리랑 전수관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소리마당으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사)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회장은 강원도 잦은아리랑(강원도아리랑)과 함께 춘천의병아리랑 전승자로 많은 제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영천시청 퇴근 5분전, ‘영천아리랑’의 의미영천시청 청사에서는 퇴근 5분 전에 영천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제9회 ‘아리랑의 날’부터 지역을 상징하는 노래 영천아리랑이 방송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직사회가 지역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생활화 하여 결속력을 높이는데 앞장 선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축제 및 경연대회와 관련 사업을 해 오면서도 전체 공직자가 지역 아리랑 계승과 전형화에 함께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사실에서 영천 시청의 이번 결행은 32개 아리랑 관련 단체는 물론 타 지역 공직사회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전해질 것으로 본다. 그동안 전국 지자체에서 아리랑 전승 활성화를 위한, 또는 창조적 계승을 위한 사업은 다양하게 펼쳐져 왔다. 초기 사업 형태로는 음원(LP레코드, 1972/2000년 이후 CD) 제작과 사설집 발간(1972), 배포이다. 다음이 노래비(기념비) 건립이다. 형태는 비 전후면에 사설과 유래를 세긴 경우와 ‘지역명+아리랑’이란 단순한 글을 새긴 표석 형태이다. 정선아리랑의 경우 1977년 비봉산에 건립한 노래비를 비롯하여 4곳에 세워져 있고, 밀양 (3 지역), 문경(2 지역)과 정읍(1 지역)과 진도(1 지역) 등에 건립되어 있다. 다음은 축제와 경연대회를 정례화 하는 경우이다. 이 형태는 대다수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다. 상주시의 경우 축제는 7년 전부터 시행해오다 경연대회는 금년 11월 말 처음으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개최 시작은 정선군이 1976년 군민체육대회 형태로 처음 시작하였고, 이어 밀양, 진도 순으로 정착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3년 세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를 기념하여 대구에서 대구아리랑제가 시작되었고, 이어 문경, 영천, 춘천, 경산, 부산, 제주 등지로 확대, 개편이 이뤄져 오는 실정이다. 예외적으로 ‘사할린아리랑제’가 코로나 정국 이전까지 4회 정례화 되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대개 외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면에서는 일회적이고, 관성적이고, 치적사업으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다를 수 있지만 지자체장의 결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치적 사업으로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어 진정성 있는 아리랑 전승 사업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있기도 하다. 이런 평가는 전 지자체 공직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사업이 아니라 특정 부서의 사업으로 이뤄진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전 구성원의 진정성이 반영된, 또는 그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아리랑을 송출하는 영천시청의 사례를 주목하게 된다. 지역 아리랑에 대한 특정 부서만의 관심이 아니라 전 공직자가 관심과 이해를 갖고, 또는 갖기 위해 시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를 권고하는 목소리가 이미 20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학계와 전승 단체가 지역 아리랑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공직자들의 전반적인 이해와 애정 없이는 지속적인 전승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 학술 모임에서나 언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해 온 터이다. 이의 결과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현재 두 지자체 청사 내부 화장실에 아리랑을 내보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행 목적 자체가 외부인 또는 관광객에 대한 제한적인 서비스 차원이지 공직 구성원 전체가 아리랑 이해를 위한 활동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과와 이의 평가가 문제이다.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면접 조사 등에 의해 평가되어 성과가 확인이 되면 이 사례는 전 지자체에 보급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영천시청의 이번 단행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코 한 지자체의 이벤트가 아닌 긍정적 문화운동의 한 모범 사례로 기록되기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8일 오후 2시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제9회 영천아리랑대축제 축사에서 이 사실을 밝혀서 외지 공연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특히 이를 의미화하기 위해 이번 영천아리랑대축제에 북한 출신 무용가 최신아를 특별 초청, 최초로 북한의 민성창법에 의한 영천아리랑을 시민들에게 전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 역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만하다. 왜냐하면 영천아리랑의 귀향 이면의 서사(스토리텔링)를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 근대사를 축약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향살이에서 영천아리랑의 기능이 어떠했는지를 전하는 계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07년 정미의병의 패퇴(敗退)로 많은 의병들이 ‘의로운 거병 정신을 지키기 위해(去之守舊)’ 연해주와 만주로 넘어갔고, 이들이 바로 해외 항일민족투쟁 중심세력인 독립군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이들이 군가로 때로는 사향가(思鄕歌)로 부른 노래인 ‘독립군아리랑’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이 독립군아리랑의 곡조가 영천아리랑 곡조와 같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문경지역과 춘천지역 의병 관련 아리랑 사설의 발굴로 ‘의병아리랑’으로 명명하여 주목해 왔는데, 그 곡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단서를 영천아리랑의 귀향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천아리랑 귀향의 역정(歷程)은 절절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의 노래 곡조로 기능을 하였고, 이를 중국 동포사회가 본래의 곡명 영천아리랑으로 불러(Naming) 주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기 항미원조 조선전쟁에 참전한 중국 동포들이 이를 북한에 전해주었다.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인 북한은 1954년 "대구 인근의 사과가 많이 나는 영천의 민요”로 기록하며 널리 불렀을 뿐만 아니라 정책가요 ‘랭산모판 큰애기’라는 곡명의 노래도 재형상하여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일본 조총련 사회와 동구권 국가 동포들에게 이를 확산시켰다. 새 세기 2000년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우리 방송에 영천아리랑이 여러 차례 송출되면서 비로소 고향 영천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다. 이런 영천아리랑의 역동적인 행로를 이번 시청 청사 방송과 북한 가수의 영천아리랑 공연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영천시의 이 같은 활동이 내년 제10회 영천아리랑대축제와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아리랑의 날 10주기 기념, 그리고 영천시가 개최하는 의병제에 더욱 크게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
송옥자 명창, 의병연구 학자들에게 ‘문경의병아리랑’ 선물운강 이강년 의병장의 역사적 항전 장소 고모산성(할미성). 의병 연구자들은 이 성과 이강연 의진의 관계를 학술적으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문경인들의 기억으로 전승되는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의 실상은 모를 수도 있다. 이를 외지 의병연구자들에게 실증적으로 알려준 이가 있다. 16일 운강이강년 의병대장 순국 113주기 추모학술대회 2부 발표 현장에서 송옥자 소리꾼이 직접 '문경의병아리랑'을 불렀다. 가을 하늘 같은 파란 한복을 곱게 입고, 무반주로 불러준 4절의 의병아리랑이다. 문경의병아리랑 문경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께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홍두깨 방망이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목에 잘놀아나난다 고모성 꼭대기 진을치고/ 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 고모성 등지고 하늘재 넘을제/ 구부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난다 앞의 두절은 경복궁 중수기에 새재의 주목인 박달나무가 근(斤)에 달려 공출되어가는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고, 세 번째 사설은 당시 고모산성에 격전을 벌인 이강년 의진의 당당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사설은 송옥자 명창이 지어 회원들이 함께 부르고 있는 것이다. 참석한 학자들과 객석에서 큰 박수가 나왔다. 누구보다도 1896년 2월 문경 가은 도태장터에서 창의하고, 농암장터를 거쳐 고모산성에서 격전을 치룬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연구자들로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의로운 이강년 부대의 거사를 문경인들이 아리랑으로 화답하고, 오늘에까지 기억으로 전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감동을 받았다. 지역 전통민요 명창으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 현장을 찾아 느낀 점을 사설로 엮는 작사자인가 하면, 이번 같이 외지 연구자들의 학술발표 현장을 찾아 문경인의 정서를 전하는 메신저가 바로 문경 지역 소리를 지켜 온 송옥자 회장이다. 이런 성실함과 적극성은 이번 뿐만 아니라, 의병 전문 학자들에게 당시 문경인들의 인식을 전하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아리랑은 당시 민중들에게는 민중공론(民衆公論)으로서 공시매체(公示媒體)였다. 당연히 의로운 정의군대(The Righteous Army) 이강년 의병의 활동을 아리랑에 실어서 다음 세대에 전하려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 이른 문경의병아리랑은 어떤 문헌 기록 못지않은 실증적 가치를 지닌다. 다음 세대로 계승하려는 의지가 담긴 민중의 기억전승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송옥자 명창의 무반주 문경의병아리랑. 외지 의병사 연구자들에게 의병정신이 깃든 문경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분명, 문경의 가을 여운(餘韻)이었을 것이다.
-
의병아리랑의 진화, 악극 ‘윤희순 안사람 의병가’최초의 여성의 의병장 윤희순은 노래를 지어 주변 여성들을 각성시켰다. 바로 ‘안사람 의병가’ 이다. 초두는 이렇다.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처지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있나 우리도 나아가 의병하러 나가보세” ‘아무리’가 세 번이나 강조된 이 ‘안사람 의병가’. 노래의 정신을 주제로 한 악극이 막을 오렸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의병에 나선 집안의 여성으로, 군자금 모집, 화약제조를 위해 인근 마을 여성 30여명을 규합하여 여성의병단을 조직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여의치 않자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을 따라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중국으로 갔다. 이후 교육활동과 양세붕이 이끄는 조선혁명군과 연계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세 아들과 떨어져 살며 고문으로 잃는 등 일제에 고초를 겼었다. 거치른 중국에서의 15년 활동, 1935년 여사는 한만은 한을 품고 8월 1일 세상을 떠났다. 금년 8월 29일은 여사의 순국 86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하여 여사가 지어 유포한 의병가(義兵歌) ‘안사람의병가’를 주제로 악극 ‘강인한 꽃 윤희순’이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이 춘천문화재단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무더위와 싸우며 연습을 하여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지역성과 단체 취지와 작품 주제가 일치하는 돋보이는 활동이다. 악극 ‘강인한 꽃 윤희순’은 우선 기존의 아리랑과 민요 그리고 춤으로 구성된 공연 중심에서 보존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하고 전문 극단 단원들이 함께하는 악극(樂劇) 형식이다. 이 점에서 한껏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특히 주인공 윤희순 여사 역을 맡은 기연옥 이사장의 활동이 돋보였는데, 대사(臺詞) 소화는 물론, 주인공으로서 서사를 주도하며, 각종 노래까지 주창(主唱) 하였기 때문이다. 극의 주제와 서사는 명료했다. 윤희순 여사의 결기로 주변 여성들을 설득시켜 동참하게 하고, 일제 앞잡이로 나선 껄렁패 남편과 그 아내의 갈등, 용서를 통해 다시 의병단을 결속시키는 과정을 그려냈다. 서사의 의미 있는 대목은 여자 의병단인 아내의 의지로 나라 팔아 돈을 챙기는 남편의 활동을 전복(顚覆)시킨 것이다. 여성의병단의 활동은 일부 남편들의 허랑한 의식과 밀고활동으로 살기를 꾀하는 남편을 감화시켜 항전에 가담케하게 한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여성의병 활동에서 발견하지 못한 진실이다. 이 주제 의식은 이 극의 문학성의 높여 주었다. 서사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었다. 극 진행에 따라 맥락에 기여하는 아리랑과 민요가 서정을 부여했다. 모두 보존회 회원들이 주도했다. ‘국문뒷풀이’ ‘봄은 오는가’ ‘홍천아라리’ ‘안사람의병가’ ‘춘천 목화따는 소리’ ‘춘천장타령’ ‘춘천의병아리랑’ ‘춘천모심는 소리’ ‘강원도아리랑’이다. 그리고 희생된 의병들을 진혼하는 독무(獨舞)도 눈길을 끄었다. 관객으로 함께한 서예가 정광옥선생과 김분호선생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는 참으로 성실한 문화단체로, 이번 작품은 성실한 연습의 결과로 감동이 컸다. 오늘 못 본 분들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있는데, 아쉽다.”고 했다.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과 단 1회로 막을 내리는 것의 아쉬움을 표한 것이다. 기획 기연옥, 연출 백형민, 극본 송정미, ‘안사람의병가’ 작곡 정기훈, 고증 엄찬호, 변사 이혁종, 그리고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회원과 풍물패가 함께 했다.
-
21'강원의병아리랑 춘천콘서트 '역사적 기억의 전승'‘21강원의병아리랑 춘천콘서트’가 19일 강원도 춘천시 의암공원 유인석 의병장 동상앞에서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올해 첫 아리랑 공연행사로서 춘천시 공식적 야외공연이다.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기연옥 회장)가 주최했다. 지난 3월 민간 주도로 설립한 첫 아리랑전수관(관장:기연옥)이 많은 관심 속에 춘천 동면 월곡리에 문을 연 이후,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첫 아리랑 공연이다. 춘천의 메카, 춘천의병아리랑 첫 무대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의병에 대한 의례와 추모를 주제로 했고, 두 번째 무대는 강원지역 토속민요와 다양한 아라리를 실연으로 펼쳤다. 특히 서백노인회로 구성된 서백민요회의 춘천논매는소리의 아라리는 향토민요의 정수를 맛보게 해주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향토민요가 갖는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귀한 무대이었다. 춘천처녀장사타령에는 초등학생 최서인과 최가인 두 자매가 출연하여 박수를 많이 받았다. 마지막 무대는 김종희 무용가가 특별출연하여 8명이 화관무를 추고, 강원도아리랑으로 막을 내렸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다양성을 선보였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는 바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이름없이 산화한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루어진 대가라는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강원도 최문순 도지사의 축사를 전하면서 행사 시작을 열었다. 기회장은 "오늘 공연은 매년 이루어지는 강원아리랑콘서트 순회공연인데 춘천 지역을 첫 번째로 정했다. 의암 선생의 의병정신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싶다. 그리고 코로나19사태로 심신이 힘든 시민들을 위무해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해설을 맡은 아리랑학회 기찬숙 연구이사는 "의병아리랑에 담고 있는 저항정신, 즉 백성들이 외세의 억압에 대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투쟁하는 의병정신이 현재는 코로나19라는 외적을 이기려는 시민들의 연대정신을 의병정신으로 승화시키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천민에서 왕족까지 전 계층이 봉기하여 나라의 주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과 애국정신을 본받자”라고 행사의 의의를 부연했다. 이어 일제항쟁기 강원도 가평에서 정미의병을 취재한 영국 메켄지 기자가 남긴 사진 한 장을 소개하고, 이 사진 속에서 영롱한 눈빛을 뿜어내는 어린 의병들이 농기구를 들고 총을 든 일본군에 죽음을 무릎쓰고 맞서면서 "살아서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 죽겠다”는 어린 의병들의 굳은 의지를 그는 세계만방에 전했다라고 소리 높여 강조했다. 오늘 공연의 서막은 이러한 의병정신을 소극 ‘함성. 춘천의병아리랑’ 무대에 투영하여 하늘을 향해 호국영령들께 뜨거운 보훈이 담긴 함성을 힘차게 올렸다. 이 무대는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경복궁아리랑 고유제 무대에서 선정작으로 뽑힌 작품이다. 관중석 시민들도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답해 주었다. 강원의병아리랑 춘천콘서트는 의병정신의 메카 춘천의 호국정신이 담긴 춘천의병아리랑을 소극으로 구성하여 지역민들에게 ‘역사적 기억의 전승’의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외에서 의병활동으로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1860~1935) 의사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기리는 안사람의병가를 아리랑으로 개사하여 지역민들과 공유하고, 이러한 의병정신을 지역민들에세 자긍심을 증진시키고자 한 행사이다 구한말 나라가 외세에 의해 위급에 처해 있을 때 전라도에서는 기우만과 기삼연, 경상도에서는 이강연, 강원도에서는 유인석 의병장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떨쳐 일어나 항일 투쟁을 했고, 특히 강원도 춘천의 여성의병장 윤희순은 안사람의병가를 지어 여자와 청년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문서로 전해지는 의병들이 불렀던 아리랑은 문경과 함께 춘천에 전해지고 있다. 오늘의 공연은 전라도 기우만 의병장의 직손인 기연옥 명창이 중심이 된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의 공연이다. 소극 ‘함성! 춘천의병아리랑’에서 불린 춘천의병아리랑 사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춘천아 봉의산아 너 잘있거라 신연강 뱃머리가 하직일세 싸리재 아흔아홉구비 우리 복병 삼악산아 우리 군대를 보호해다오 의병 가문의 후손 기연옥 명창의 의병아리랑 전승활동 기회장은 기우만, 기삼연, 기산도 의병장의 가맥을 잇는 후손으로서 의병정신을 이어받아 전국 의병 유적지를 찾아서 의병가를 발굴하고. 학계와 시민들. 특히 해외 동포들에게 ‘역사적 기억의 전승, 의병아리랑’ 음반을 무상보급 해오고 있다. 춘천의병아리랑과 안사람의병아리랑. 춘천아라리의 중심인물로서 열연을 펼쳤다. 집안에서 전해지는 춘천의병아리랑을 강원도민에게 전하기 위해 2015년부터 강원도와 전국, 러시아 중국 등지 독립유적지에서 의병아리랑콘서트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기회장은 매년 한겨레아리랑연합회와 사할린주한인협회가 공동개최하는 '한민족공동체실현을 위한 사할린 아리랑제'에서 춘천의병아리랑을 널리 알리고 있다. 춘천의 의병정신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과 서강대학 대학생들을 초청하여 1박 2일동안 춘천의 유적지를 알려왔다. 또한 외국인 유학생들로 구성된 아리랑인스티튜트 서울지부 회원들을 초청하여 강원도 지역 아리랑과 춘천의병아리랑을 배워주고 춘천지역 의병유적지답사를 수행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국내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 및 사할린 청소년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춘천 의병유적지답사를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였다.
-
국악인 추천 휴일의 시 32: 5월을 드립니다 ( 오광수)5월을 드립니다 오광수(1953~ )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추천인:기찬숙(벤처아리랑 대표) "의병아리랑 답사차 가평을 오가며 싱그런 5월을 만끽했다. 문득 누군가에게 이 찬란한 오월 풍경을 전하고 싶어졌다. 오래 전 스크랩 해놓은 ‘5월을 드립니다’와 함께. 누군가 받아 주시겠죠!”
-
가평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최승녀가평아리랑답사 가평아리랑연구보존회(회장:최승녀)는 왕십리아리랑보존회(회장:이혜솔)와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와 함께 가평아리랑답사를 수행했다. 5월 6일 코로나로 인해 작년부터 모든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1년 동안 찾아보지 못한 가평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4곳의 역사유적지를 찾아서 술잔을 올리고 가평아리랑 음반을 헌정했다. 그리고 함께 호국영령들을 향해 아리랑을 불렀다. 가평군 의병들이 결집하여 1919년 삼일절 만세운동의 불을 지핀 장소에서부터, 애국충절의 터(가평북중학교), 가평의병항일운동기념비, 가평군학도의용대참전비 4곳의 유적지를 답사했다. 가평의병항일운동기념비는 의병운동과 삼일만세운동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전국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천민들까지 전 계층이 봉기해 을미의병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가평에서 봉기했던 380여 명의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1919년 3월 15일 3200여 명의 군민이 모여 독립만세를 불렀던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 1991년 건립되어 매년 보훈행사가 거행되어오고 있다. 가평아리랑과 최승녀 가평에서 집장촌을 이루면서 수세대를 살아온 최회장은 "나는 배운 것은 없지만 어른들에게 듣고 자란 가평의 역사는 늘 가슴에 담겨있다. 가평은 당시 의병들이 서울진격 작전의 마지막 교점이다. 의병가에 나오는 보납산(벌업산)은 왕이 한양에서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보납산은 작은 산이지만 북한강과 가평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솟아 있는 산이다. 북면은 6,25전쟁 당시 서울 수호의 마지막 거점지역이다. 그만큼 가평 백성들은 역사의 증인으로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세대들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다. 그래서 아리랑에 가평의 역사와 심성을 실어서 부르고자 한다.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왜냐하면 노래는 남으니까.......” 솔직담백한 최회장의 말에는 힘이 있다. 지역의 문화를 전승하겠다는 의지가 굴곡진 삶과 닿아있다. 최회장은 2000년초 제조사업의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자, 잠시 서울로 출퇴근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서 늘 어릴때부터 듣고 자랐던 아리랑을 부르면서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평의 아리랑을 찾기위해 자비를 들여서 5년동안 전래민요 채록작업을 해오다가 2010년 가평아리랑연구보존회를 창립하고 매년 군에서 보조금을 받아서 가평아리랑제를 추진해오고 있다. 최승녀 회장은 자발적 전승주체로서 지역에서 공인하는 아리랑 소리꾼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 이전, 가평군에서 지역예술문화 활성화를 위해 2010년에 결성한 가평아리랑연구보존회는 ‘가평군민의 날’ 행사, 보훈의 날에는 가평아리랑을 헌사한다. <가평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후렴) 명지산 중턱에 초가집 짓고 옥계수 길어다 밥지어 먹세~ 한양길 갈적엔 큰 마음먹고 열두구비 돌적엔 발발떤다 수덕산 선배님들 공부하나 꽃너미 아가씨들 다 늙어가네~ 강건너 물건너 정든님 두고 한양길 가려고 단봇짐 싸네~…” 한양길 갈 적엔 큰 마음먹고 열두구비 돌 적엔 발발 떤다. 수덕산 선배님들 공부하나 꽃너미 아가씨들 다 늙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가평아리랑은 "명지산 중턱에 초가집 짓고 옥같이 맑은 물인 옥계수 길어다가 밥지어 먹세” 라는 첫 구절에서 가평의 명산과 명수를 노래한다. 이어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난한 삶의 고개를 아리랑으로 넘어가자는 마음이 담겨있다. 최회장은 "일제강점기 '산자수명'이라 불렸던 아름다운 내 고향 가평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늘 마을에서 듣고 자랐던 ‘가평의 전래민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2004년 팔을 걷어부치고 민요 채록에 나섰다. 막걸리와 떡을 자동차에 싣고 연인산, 보납산, 화악산 골짜기에 대대로 살고 있는 농투산이들을 찾아나섰다. 당시 가평은 민요나 국악을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 라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가장 많이 부르는 민요는 역시 아라리이었다고 한다. "정선에는 정선아리랑, 진도에는 진도아리랑, 밀양에는 밀양아리랑이 있듯이 우리 가평에도 전해 내려오는 아리랑이 있지 않을까하는 가평의 가락, 가평의 정서가 담긴 아리랑도 있지 않을까?”라는 굳은 신념으로 결성된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다. 그만큼 기반이 단단하고 초기 구성 회원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소독기를 들고 마을 공공장소를 정화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언제나 소독기를 항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혜솔 회장은 "이번 가평아리랑답사를 통해 의병아리랑의 존재와 삼일만세운동에서 우리 민족이 불렀던 아리랑을 전승하게 되어서 나도 무언가 이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자 하는 결심이 더욱 다져졌다. 아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기 서울 지역 아리랑 전승지역을 답사할 마음이 생겼다."라고 주먹을 굳게 쥐었다. 그리고 다음 행사에서는 가평아리랑과 왕십리아리랑이 함께 하는 무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최회장의 손을 잡았다. 가평아리랑연구보존회는 최근 가평아리랑 음반을 발매하여 군민들과 연구자들에게 무상배포를 하고 있다.
-
[특별기고] ‘아리랑’과 ‘고려장’판소리 전문가 이용수 우리가 평소 알고 있고, 또 즐겨 부르고 있는 아리랑 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본래 아리랑 가사에는 없던 내용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만의 노래가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그간 채집하고 조사하였어도 그러한 가사를 가진 아리랑은 한 번도 없었다. 그 간 어려움에 연해주로 이민 간 몇 대 후손들이 자주 불렀던 고려인 아리랑에도, 세계 1차대전 중 포로로 끌려간 고려인들을 한 독일 교수 FWK 뮬러(Mueller)가 독일 전역수용소에서 251개 민족의 언어와 노래를 채집하면서 러시아에서 잡혀 온 고려인 4명에게서 채집한 고려인 아리랑에도 그런 가사는 없다. 또 의병아리랑, 독립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북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의 어느 가사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또 한국을 가장 사랑했던 헐버트( Homer B. Hulbert)박사도 1886부터 아리랑을 채집하고 1896년에 최초로 발표한 아리랑의 악보와 가사를 보아도 그런 가사는 없다. 다만 1914년 이상준(李尙俊)의 ’조선속곡집(朝鮮俗曲集)‘에서 처음으로 ‘십리를 간다고 찌걱거리더니, 오리도 못 가서 발병 났네’라는 그와 비슷한 가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다음은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가 나오면서 영화가 흥행을 이루었고, 나운규는 나름대로 그 영화 주제가를 만들어서 붙였다. 1931년 발행한 그의 ‘영화소곡집’에서 처음으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붙인 것이다. 나운규가 고향 함경북도 회령에서 소학교 다닐 때 남쪽에서 올라간 철도공사 노무자들이 자주 불렀던 그 아리랑이 너무나 심금을 울리고 좋았기에 남으로 내려 온 후로도 그 아리랑을 듣고 싶었으나 같은 아리랑을 듣질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렇게 가사를 썼고, 이를 후일 ‘신아리랑’, 또는 ‘본조아리랑’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때 아리랑 영화가 의외로 흥행하자 이에 당황한 일본은 또 나쁜 작업에 들어간다. 일본은 나쁜 의미의 한자를 붙여 ‘我離娘’으로 억지표기를 하여 퍼뜨린다. 나는 너(여자)를 발로 차버리고 떠난다. 한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며, 부정적인 정서가 된다. 아리랑은 본래 한자가 없었다. 본래 천손족(天孫族), 즉 하늘의 아들이란 뜻으로 ‘아리아족’과 같이 신성시하여 부르는 이름인데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그간 아리랑(阿里郞)으로 즐겨 써왔었던 말이다. 그런데 일본은 ‘내가 너(여자)를 발로 차버리고 떠난다’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아리랑 가사를 실어 널리 퍼뜨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직까지도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 그대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아리랑을 부를 때 마다 꼭 들어가니 필자는 아리랑을 부르거나 들을 때마다 항시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다. 본래 한민족이 자신을 떠난 임에게 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옹졸하고, 앙갚음이나 하는 그런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가사를 고쳐 제대로 부르던가, 아니면 최소한 우리가 제대로 알고나 불러야 하겠다. 아니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민요를 그런 식으로 부를 수는 없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국민가수라고 할 수 있는 장사익 가수가 부른 ‘어머니 꽃구경 가요’를 들으면 누구나 가슴이 찡하는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꽃구경 가는데, 어머니가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아들이 자기를 산속에 버리러 간 것으로 생각하여, 그래도 아들이 돌아올 때 길을 잃지 않도록 솔잎을 따서 뿌려준다는 가슴이 찡하는 가사 내용이다. 산에다가 부모를 버려 거기서 며칠 살다가 굶어 죽게 한다는 뜻으로 흔히 고리장, 또는 고려장이라고 잘 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고리장 제도는 처음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없었던 말이다. 오죽하면 아놀드 토인비가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앞으로 인간이 지구를 떠나 살아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 없이 몸만 가야 하는데, 꼭 하나 가지고 갈 것이 있다면 그건 한국의 효도 사상일 것이다.”라고...... 그처럼 언제나 효를 제일 근본으로 삼고서, 법을 어기면 크게 벌을 주었던 우리 조상들이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일본이 등장한다. 일본은 미국인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가 일본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에게 고리장에 대한 자료를 주어 1882년 <은자의 나라, 한국>이라는 책을 쓰게 한다. 본래 역사학자도 아니고 자연과학연구자인 그가, 또 한국에는 한 번도 와보지도 않고 어찌 그러한 책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겠는가? 본래 설화에서는 노인을 버려 장사지낸다는 뜻으로 기로장(棄老葬)이란 말이 었다. 이 ‘기로장’이 발음이 ‘고려장’과 비슷하다고 해서 ‘고려장(高麗葬)’ 또는 ‘고리장’으로 만들어 부른 일본인데, 이런 발음 내용을 외국인이 어찌 알고 그렇게 썼겠는가? 그 후 조선총독부의 <조선동화집>에 수록하여 우리 어린이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었고, 이병도는 1948년 <조선사대관(朝鮮史大觀)이란 책에서 이를 소개하였으며, 또 1963년 김기영의 영화 <고려장>에서 소개가 된 후로 그게 마치 우리 민족의 풍속처럼 내려오게 된 것이다.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고등경찰에게 내려준 공문에 이미 그러한 교육정책이 들어있었다. 한민족을 보잘 것 없이, 또 선조들을 멸시하게 만들라는 지시가 들어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아직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완전 독립이 되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나쁜 역사와 풍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나라 바로 세우기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강원지역 전통아리랑 전수 활성화 기대민간 주도로 설립한 첫 아리랑전수관이 3일 많은 관심 속에 춘천 동면 월곡리에 문을 열었다. 사단법인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는 이날 동면 월곡리 산52번지에서 의병아리랑 전수관 개관식을 가졌다. 개관식에는 한기호 국회의원,고옥자·김경희·김진호·한중일 시의원, 최돈선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윤용선 춘천문화원장, 이찬우 춘천시 문화예술과장, 김지숙 시의원, 김연갑 아리랑학교장 , 이종호 광복회 도지부장, 김진선 윤희순기념사업회장, 안중석 굿리더 아카데미 춘천권 총원우회장,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 등이 참석해 새로운 문화공간의 탄생을 축하했다. 강원도민일보 김중석 사장의 축하화환과 40여 기관 단체 지인들의 축하 화분과 화환이 답지했다. 한기호 국회의원의원은 "의병정신을 아리랑으로 승화시킨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고 했고, 아리랑학교 김연갑 교장은 "기연옥 회장은 명분과 진정성에서 인정받는 명창”이라고 격려했다. 특별행사에서는 국내 최고 명인 소장 대금 증정식이 있었고, 임애심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총무에게는 공로패 수여식도 있었다. 축하공연으로 대북 공연과 화관무 공연이 꾸며졌다. 기연옥 관장은 이번 전수관은 민간단체가 주도해 세운 첫 아리랑전수관으로 국악 인재 육성과 지역주민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쓰일 예정이다. 또 이번 전수관 설립을 계기로 강원지역 토속아리랑에 집중적인 전승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연옥 이사장은 "의병아리랑전수관을 만드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의병 가문과 많은 분들이 용기를 주시고 도와주셔서 제가 태어나고 자란 춘천 땅 동서남북에 4개 기둥을 박고 의병아리랑전수관 지붕을 올렸습니다. 눈물나도록 고맙고 감사합니다”며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예술 분야 발전에 더욱 힘을 기울여 후학들에게 우리의 소리와 아리랑정신를 전수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로 이끌어 가도록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기연옥 관장은 의병장 기우만 직손으로서 춘천의병아리랑과 전국에서 불렸던 의병아리랑을 발굴하여 만든 아리랑음반을 국악계 및 학계와 해외동포사회에 널리 배포하고 알려오고 있다. 2014년부터 매년 국내외에서 강원아리랑 순회공연을 해오고 있다. 한편 기연옥 관장은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이후, 국내 외국인 유학생 및 성균관대학과 서강대학 대학생들을 초청하여 춘천의병아리랑 유적지를 알리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리랑학회 기찬숙 연구이사는 "전국 무형문화유산 소리를 중심으로 한 전수관 중 민간주도로 설립된 곳은 처음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
[새책 소개] 우리가 몰랐던 국악음반 이야기 (지은이: 정창관)우리나라 전통 음악 음반의 약사(略史)를 시작으로 음반으로 순례하는 아리랑까지, 우리 민족의 음악 아리랑을 이해하고 우리 국악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목차 ●국악 음반 이야기 첫 번째 •우리의 전통 음악, 그 음반의 약사(略史) 두 번째 •한민족 최초의 음반, 그 시작 세 번째 •한민족 최초의 아리랑을 소리로 듣다 네 번째 •손으로 쓴 한민족 최초의 오선보 다섯 번째 •찾아야 할 우리나라의 첫 원반 여섯 번째 •우리 민족의 한을 담고 있는 유성기 음반 1. 일본 축음기상회 2. 일동축음기주식회사 3. 합동축음기주식회사 4. 일본 콜롬비아축음기주식회사 5. 일본 빅터축음기주식회사 6. 시에론 레코드 7. 일본 포리돌축음기상회 8. 태평축음기주식회사 9. 오케축음기상회 10. 그 외의 회사들 11. 일제 강점기의 유성기 음반 출반 현황 일곱 번째 •스웨덴 황태자에게 선물한 사라진 유성기 음반 여덟 번째 •고국으로 돌아온 빅터 축음기 원반 아홉 번째 •최초의 유성기 음반 복각반 1. 판소리 5명창의 출반 2. 판소리 5명창 열 번째 •100년 후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 CD음반 ●국악 테마 음반 이야기 첫 번째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원통 음반 1. 미국의 1896년 유학생의 노래 2. 독일의 1916년 고려인의 노래 3. 미국과 독일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의 원통 음반 4. 미국 유학생의 노래 vs 독일 고려인의 노래 두 번째 •금속 음반에서 가져온 깨끗한 음원 ‘춘향전’ 1. 빅터사의 금속 원반에서 가져온 ‘춘향전’ 2. 일본 콜럼비아사의 디지털 음원 ‘춘향전’ 3. 빅터 축음기 원반 vs 일본 콜럼비아사의 디지털 음원 세 번째 •유성기 음반 복각반으로 듣는 아리랑 1. 최초의 아리랑 복각 음반 〈아리랑Ⅰ〉 2. 유네스코 등재 기념 복각 음반 〈아리랑, 음반으로 꽃 피우다〉 3. 민족의 노래 〈아리랑Ⅰ〉 vs 〈아리랑, 음반으로 꽃 피우다〉 4. 1926년 영화 《아리랑》의 음원과 그 이전 아리랑 음원 5. 복각되어야 할 아리랑 유성기 음반과 복각된 2장의 아리랑 음반 네 번째 •다시는 기획할 수 없는 토속 민요와 판소리 음반 1. 전국의 토속 민요를 담은 한국민요대전 시리즈 2. 판소리 다섯 바탕과 단가를 담은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 3. 다시는 기획·제작할 수 없는 국악 음반 4. 토속 민요 음반과 판소리 다섯 바탕 출반은 계속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민요와 전통 가곡의 특별한 음반 1. ‘창부타령’으로 천하를 진동시킨 〈전태용 선생 경기 소리판〉 2. 경주 양동 마을 관가정에서 담아낸 〈가곡〉 3. 릴테이프에서 가져온 음악과 DSD데이터로 담아낸 음악 4. 〈전태용 선생 경기 소리판〉 vs 〈정가악회 풍류 Ⅲ 가곡〉 ●음반으로 순례하는 아리랑 아리랑, 순례의 시작 1. 헐버트 아리랑과 유학생의 아리랑 2. 나운규의 아리랑 3.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리랑 음반 4. CD음반으로 순례하는 아리랑 첫 번째 •정선아라리(정선아리랑) 1. 한국민요대전 속에 든 ‘정선아라리’ 2. 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 ‘정선아리랑’ 3. 3대의 목소리로 담은 〈정선아라리〉 4. 정선군이 출반한 〈정선아리랑〉 5. 서울 ·경기제 ‘정선아리랑’과 ‘강원도아리랑’ 두 번째 •진도아리랑 1. ‘진도아리랑’의 단초를 제공하는 〈아리랑, 음반으로 꽃 피우다〉 2. 유일한 ‘진도아리랑’ 전곡 음반 〈진도아리랑〉 3. 음반 명이 ‘진도아리랑’인 〈진도아리랑·만가, 신영희〉 4. ‘진도아리랑’을 한 곡 수록한 〈한국민요대전2 - 전라남도편 16〉 5. 진도 무형 문화 예술 시리즈 〈진도민요〉 6. 토속 민요의 명창 조공례의 ‘진도아리랑’ 〈남도 들노래〉 세 번째 •밀양아리랑 1. 3곡의 ‘밀양아리랑’이 수록된 〈아리랑, 음반으로 꽃 피우다〉 2. 유일한 ‘밀양아리랑’ 음반 〈영남 명물 밀양아리랑〉 3. ‘밀양아리랑‘ 한 곡만을 수록한 〈한국민요대전 - 경상남도편 4〉 4. 인간문화재 3인의 명창이 부르는 ‘밀양아리랑’ 〈한국고전민요〉 5. 북한에도 있는 ‘밀양아리랑’ 6. ‘독립군아리랑’과 ‘광복군아리랑’으로 변한 ‘밀양아리랑’ 네 번째 •본조아리랑 1. 유성기 음반 〈영화 설명 아리랑 1·2·3·4〉 2. 영화소패 ‘아르렁’으로 출반된 〈아리랑, 음반으로 꽃 피우다〉 3. 유네스코 회의장에서 부른 아리랑 〈Chant Arirang et Minyo〉 4. 김영임 명창의 〈김영임·아리랑〉 5. 아리랑을 모은 〈아리랑 모음곡집〉 다섯 번째 •지역 아리랑 1. 경상북도 문경의 〈문경아리랑〉 2. 경상북도 영천의 〈영천아리랑〉 3. 경상북도 예천의 〈예천아리랑〉 4. 대구의 〈탄생 대구아리랑〉 5.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영남아리랑’ 6. 강원도 춘천의 〈의병아리랑〉과 강원도 태백의 〈태백 광부아리랑〉 7. 경상북도 상주의 〈입소리/상주아리랑(메나리제)〉 8. 경상남도 창녕의 〈새로운 창녕아리랑〉 여섯 번째 •북한 아리랑 1. 중국 길림성의 〈조선민요1, 아리랑〉 2. 민족의 노래 아리랑 시리즈 〈북한 아리랑〉 3. 북한 민요 전집 〈북녘땅, 우리 소리〉 4. 북한 아리랑의 집대성 〈북한 아리랑 명창 전집〉 5. 북한 오케스트라로 듣는 〈아리랑 환상곡〉 일곱 번째 •일본으로 간 아리랑 1. 일본어로 제작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2. 이색적인 아리랑 〈일본으로 간 아리랑〉 3. 일본에서 출반된 〈북· 남 아리랑의 전설〉 4. 한일 동시 발매된 〈아리랑의 수수께끼〉와 〈아리랑〉 5. 우리말과 일본어로 출반된 〈한국의 아리랑〉 여덟 번째 •해외 동포 아리랑 1. 광복 50주년 기념 〈해외 동포 아리랑〉 2. 중국 연변의 여성 동포들이 부르는 〈아리랑 낭낭〉 3. 재일 교포가 부르는 〈청하의 길〉 4. 해외 동포와 입양아를 위한 〈The Heart of Corée in cool Jazz〉 ■책 속으로 1896년 7월 24일에 녹음된 한민족 최초의 음반인 6개의 에디슨 원통 음반에는 모두 11곡이 실려 있으며, 녹음 당시에 플레처 여사가 음반마다 적은 메모가 남아 있다. 이 메모와 6개의 음반은 1930년 대에 미국 의회 도서관에 기증되어 지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미국 메릴랜드대 학교의 로버트 프로바인(Robert Provine) 교수(지금은 퇴직)가 미국 의회도서 관의 목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 _ p.20 한민족 최초의 음반, 그 시작 독일의 학자 빌헬름 알베르트 되겐(1877~1967)이 다양한 문화 권과 타민족 출신의 군인들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와 음악을 기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녹음 프 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당시 쾨니히스베르크, 뮌스터 포로수용소에 있 던 러시아 소속의 고려인 포로 3인도 1916~1917년 사이에 녹음에 참여하 게 된다. _p80 우리에게 남겨진 원통음반 헐버트 박사는 그의 저서 『대한제국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1906)에서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마치 그들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것과 같은 비중이다’라고 표현 하였는데 이로써 아리랑이 한국인에게는 매우 친숙 한 민요였음을 알 수 있다. _ p116 아리랑, 그 순례의 시작 ■지은이소개 청우(淸羽) 정창관 국악 애호가이다. 경남 창녕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HSBC은행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주)정비앤에이(www.jungbna.com) 대표로 있으며 국악 FM방송 《정창관의 음반에 담긴 소리 향기》 코너 출연 중이다. 세계 최대 국악 CD음반 웹사이트 《정창관의 국악 CD 음반 세계》와 유튜브 채널 《정창관의 아리랑》을 운영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과 국악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2005년 KBS 국악 대상 수상_ 출판 및 미디어 부문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 수상_ 문화예술 발전 기여 2010년 난계악학 공로상 수상_ 영동군 난계기념사업회 수여 2012년 국립 민속박물관 관장 표창장 수상_ 민속문화 발전 기여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 수상_ 문화예술 발전 기여 2019년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수상_ 돈의문 박물관마을 재개관 유공 시민 2020년 정부 화관 문화훈장 수훈_ 국악 애호가
-
아리랑의 개념과 범위 김연갑/(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아리랑’이란 말은 다면체의 언어이다. 그런 까닭에 쓰임과 의미도 다양하다. 그 실상의 하나가 북한에서의 ‘아리랑민족’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사용이고 최근 대표적인 트롯 가수 나훈아가 ‘트롯 가요’의 장르 명을 ‘아리랑’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한 경우이다. 전자는 민족동질성을 말하는 ‘한민족’이란 개념의 변용인듯한데, 결과적으로 남북간의 정치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용어로 쓰이고 있고, 후자는 마치 향찰 표기의 신라 가요를 ‘향가’로 부르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 이런 주장의 배경은 아마도 우리가 가장 널리, 가장 좋아하는 가요 장르를 우리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어떻든 오늘에서 아리랑은 곡명이나 특정 장르 명칭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념의 담론으로까지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그만큼 그 의미가 간단치 않다. 아리랑의 범위는 곡명에서 ‘아리랑’을 쓰거나 여음(뒷소리나 앞소리)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나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랑····’ 또는 ‘아라리가 났네’를 쓰거나 향토 가명이나 변이형인 ‘아라성’·‘아(어·우)리’·‘어러리’를 쓰는 것 등이다. 그리고 기층음악권 가운데 아리랑과 같은 곡조를 쓰는 것이 있는데 이 경우가 정선아리랑 곡조인 ‘한오백년’ 등이 있는데, 이 역시 포함된다. 우리는 여러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언필칭 아리랑의 종류와 그 사설을 들어 ‘50여 종에 6천여 수’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지역의 이름을 딴 것(진도·밀양 등), 기능에 따라 부르는 것(뗏목아리랑), 후렴의 음가를 명칭으로 한 것(‘아라성’)과 음악적 특성을 이름에 얹어 부르는 것(긴아리랑·엮음아라리) 등이 있다. 특히 조국을 떠나 해외에 사는 동포들이 지어 부른 창작 아리랑(중국 ‘기쁨의 아리랑’, 일본 ‘나의 아리랑’, 미국 ‘민들레아리랑’)이나 예술가곡(조수미의 ‘아리 아리랑’, 최영섭 작곡 ‘의병아리랑’)이나 국악가요(채치성 작곡 ‘꽃분이네야’)나 대중가요(조용필의 ‘희망의 아리랑’, 한 돌의 ‘홀로아리랑’)등을 포함하고, 또한 인접 장르에 삽입되어 불려지는 것(장소연 작 연극 의 삽입곡)들까지도 아리랑의 범위에 포함한다. 그런가하며 영화(나운규 감독 ·연극(박승희 워작 ·무용(최승희·조택원 등의 작품 )같은 무대작품 뿐만 아니라 담배 같은 생활용품 등도 있다. 이들 역시 아리랑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의 탄광이나 군사시설 구축 현장 주변에 있는 ‘아리랑고개’ 같은 민족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지명 유래 같은 것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아리랑’에는 중층적인 의미와 역사성이 담겨 있어 간단하지가 않다. 이를 굳이 나눈다면 광의(廣義)와 협의(狹義), 그리고 최협의(最狹義)로 구분할 수 있다. 광의의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아라리)을 그 연원으로 갖는 민요 장르와 여기서 확산된 모든 음악양식의 작품군(作品群)과 여기에 타(他)장르인 문학·영화·연극작품 등은 물론 ‘아리랑담배’나 ‘아리랑 라디오’나 잡지 과 같이 생활 속에 확산된 문화현상까지도 포함된다. 협의로는 민속음악으로서의 민요 아리랑만을 말하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나름대로의 기층성을 확보하고 전승력을 갖고 불려지는 아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아리랑’이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테스트로서의 아리랑으로, 곡명에서 ‘아리랑’을 쓰고 후렴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를 쓰는 민요 아리랑을 말한다. 소위 4대 아리랑(서울·정선·밀양·진도)을 비롯해서 중원·제주·울릉도아리랑 에다 ‘신아리랑’, ‘엮음아리랑’ 등이 있다. 최협의의 아리랑이란 개별적 수식 없이 그냥 ‘아리랑’이라고 부를 때의 것으로 1920년대 나운규 감독의 영화의 주제가로 탄생하여 서울·경기 지역에서부터 불려지기 시작하여 ‘신아리랑’으로 불리다 1940년대 ‘아리랑’ 또는 ‘본조아리랑’으로 대표성을 부여 받아 불리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아리랑의 대표 또는 가장 중심적인 아리랑은 전한민족 구성원과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세마치장단에 2행 1련에 후렴이 있는 정형성을 갖고 불리는 아리랑이다. 이로부터 ‘아리랑’이란 곡명은 같지만 곡조나 사설이 다른 많은 버전이 있게 되었다. 이는 아리랑의 특징이기도 한 같으면서도 다른 아리랑, 다르면서도 같은 아리랑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리랑을 북한에서는 1920년대의 항일 민족운동에 영화이 크게 기여했고, 그 주제가이 해외 항일 빨치산 활동에 함께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1920년대 아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여러 명칭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은 ‘본조아리랑’ 또는 그냥 ‘아리랑’이다. 우리가 개별적인 아리랑을 지칭할 때는 바로 이러한 최협의(最狹義)의 아리랑을 말하는 경우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여타의 아리랑들은 각각의 역사성이나 자체적인 가치 평가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기보다는 본조아리랑의 명성,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사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명난다. 에서 민족감정으로 환치되어 확산되면서 민족사적 가치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안뷔치 선생 추모20주기 기념 공연, <님을 그리며> 3월 11일안뷔치 선생 추모20주기 기념 공연 일시: 2017년 3월 11일 오후 2시/6시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주최: (사)한국전통민요협회 주관: (사)한국전통민요협회 후원: (사)우리음악연구회, 명인주단 - 경기명창 안비취 선생 소개 경기민요 명창이다. 본명은 안복식(安福植).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가곡 명인 하규일(河圭一)에게 궁중무용과 가곡을 배웠고, 명고수이자 무용가인 한성준(韓成俊)에게 민속무용을, 경・서도 명창인 최정식(崔貞植)에게 경기소리를 배웠다. 그의 예명은 1939년 경성방송국에 출연할 때 최정식의 스승인 최경식(崔景植)이 지어준 것이다. 1959년 한국민속예술단을 결성한 이후 일본, 미국의 교포를 대상으로 하는 활발한 국외공연으로 국악을 널리 알렸다. 1960년부터는 한국민요연구회의 회장으로 민요의 전승・보급에 힘썼다. 1979년에는 대악회(大樂會)의 이사에 취임하였고, 1981년에는 평화통일협의회의, 1989년에는 한국국악협회의 부이사장을 맡았다. 1992년부터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이사를 역임하였다. 1975년 50세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 이 외에 제4회 한국국악협회 한국국악대상(1985), 제19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1992),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1995) 등을 수상하였고, 1992년에는 제24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1997년 서울에서 향년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 프로그램 1부 (14:00) 01 유산가 김혜란 외 185명(김선란, 임수현, 김단아, 김혜영, 김빛여울) 02 노랫가락/청춘가 임춘희, 한진자, 김점순, 박소연 창 부타령 최무근혜, 김보연, 고금성, 전병훈 03 어랑타령/궁초댕기 이희문, 신승태, 조원석, 김주현, 양진수 04 천안삼거리/양산도/자진방아타령 최수정, 서정화, 권정희, 공윤주, 하지아 05 베틀가/오돌독/오봉산타령 정명주, 박향임, 유금숙, 신자순, 원미희 06 한강수타령/박연폭포/매화타령 김단아, 이경숙, 이나영, 김순이, 한혜경, 박윤서, 유명숙 07 정선아리랑/긴아리랑/이별가 임정란, 이호연 08 풍년가/밀양아리랑 이점숙, 임영희, 김경사, 김기숙, 김유자, 김옥주, 김옥이, 채정숙 09 도화타령/매화타령 백은희, 김소희, 이소연, 장혜지, 최수안, 이능경, 정태경, 문도희, 김소희 10 창부타령 이덕용, 김민지, 최주연, 양슬기, 성슬기, 정유나 - 프로그램 2부 01 제비가 이호연 외 181명 ( 이 금 미, 임춘희, 한진자, 최무근혜, 김점순, 박소연, 김보연, 고금성, 전병훈, 김길은, 김정연) 02 계자제서/촉석루 유창, 이송미, 이수연, 서해인, 서윤희 03 노랫가락/청춘가/태평가 최영숙, 임수현, 김선란, 조유순, 오시원 04 건드렁타령/는실타령/도라지타령 박진하, 서정화, 강효주, 최윤영, 전영랑 05 양산도/경복궁타령 문영식, 김진찬, 안재현, 하인철, 김영길 06 한강수타령/박연폭포/어랑타령/궁초댕기 이은자, 김선옥, 임두례, 왕안숙, 예나경, 강세정 07 정선아리랑/긴아리랑/이별가 임정란, 이호연, 이금미 08 강원도 토속민요 “의병아리랑” 이유라 외 12명 (함영선 , 장은숙, 이은미, 김현정, 여해인, 이소연, 홍승희 , 이소나, 이슬, 여채은, 최은영, 박희린) 09 도화타령/매화타령 백은희, 김소희, 이소연, 장혜지, 최수안, 이능경, 정태경, 문도희, 김소희 10 창부타령 채수현, 이덕용, 김민지, 최주연, 양슬기, 성슬기, 정유나
-
명사초대ㅣ 김재홍 의원 나의 아리랑 小考(소고)명사초대 / 김재홍 의원 나의 아리랑 小考(소고)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인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이 노래를 알것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아리랑이 선정됐다. 선정과정중에서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었고 심사했던 이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아리랑" 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줬다." '듣는 도중 몇번씩 흥이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이었다고 했다. 아리랑을 연주한 이는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 연주했다.”는 2003년 AP통신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실였다. 아리랑 ! 이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도 드물것이다. 이 아리랑 연합회를 진두 지휘할 이사장으로 김재홍 의원이 지난 10월 16일 추대되어 만나보았다. ▶ 한완상 선생에 이어 만장일치로 위촉받았으며 추대식이 아주 특별하게 했다는데요. ■ 예 감사합니다. 이사장에 추대받고 마침 정선아리랑 축제와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정선지부 현판식에 참석하게 됐다가 정선에서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 2005년도에 많은 아리랑 행사와 기획을 한다는데요. ■ 하나는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이구요. 둘째는 비무장지대 남북아리랑 축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세째는 세계무형문화재 축전으로 아리랑페스티벌을 개최입니다. 네째는 문화재청 산하 아리랑연구소 및 음원자료원 설치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로 아리랑 편찬과 전수사업입니다. ▶ 아리랑 외에 관심있는 국악 분야가 있다면요. ■ 아리랑도 전통문화예술의 한 뿌리입니다 또 제가 문화관광위원회에 소속된 의원입니다. 그래서 국악과 관련된 콘텐츠입니다. 첫째로 방송이나 신문이 되겠지요 특히 방송은 실시간에 국민들에게 전파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국악방송이 있는데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지않고 서울, 경기 전북지역만 송출이 된다고 합니다. 신명나고 흥겨운 우리국악을 전국에 계시는 국민들이 향유하도록 국악방송을 전국에 송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력하겠습니다. ▶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또 복직하여 논설위원으로 계시고 북한전문가로 익히 알려지셨는데요 국악을 통한 교류나 계획이 있다면요. ■ 예, 우선적으로 그 하나가 비무장지대 남북아리랑 축전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 1991년의 남북 단일팀 단가로 아리랑이 됐지요. 또한 판문점 회담 역사에서 유일한 동일안 도출은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은 남북 정치사에서나 문화 교류사에서 획기적이면 아리랑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 혹 아리랑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러 보셨는지요. 다양한 채널이 많은데 아리랑은 배운다거나 체계적으로 배울 생각은 있으신지요. ■ 지난 10월 정선아리랑 축전에서 부른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머뭇거려지만 같이 부르니 가능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국회내에서 모임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배울까 합니다. 리듬 가사 지역정서 다르고 정선, 진도 아리랑 서로 전혀 다릅니다. 지역적 아리랑이 120개정도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 언론개혁과 중요성 또한 문화콘텐츠 진흥과 남북문화교류에 관심이 많은신데요. 2005년도 의정 계획이 있다면요. ■ 21세기 선진형 개혁정치를 위한 제4세대 정당론을 가지고 17대 국회에 등원한지 엊그제 같은데 의정활동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05년도에는 더욱 열심히 이렇게 일하겠습니다. 1.언론개혁의 마무리 해로 삼고 국민이 바라는 언론개혁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문화콘텐츠진흥 및 남북문화교류 사업을 통해서 국가경쟁력 및 서민 경제살리기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3.민족의 노래 ‘아리랑’ 5대 정책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적 자랑거리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4.국회 정치 커뮤니케이션연구회를 더욱 발전시켜 국회내 새로운 정책국회,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정립하겠습니다. 5.의원입법 및 현장조사에 의정활동의 중점을 두어 국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 되도록 하겠습니다. ▶ 최근 국회 문화재청 국정감사 질의에서 김재홍의원(열린우리당·문광위)이 아리랑의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과 건립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관련 단체에서는 이의 필요성과 지정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에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씨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했다. 1) 지정의 필요성 가. 아리랑에 대해 우리 스스로의 인식 제고. 이미 세계화한 현상을 이론화 하고, 국가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여야 한다. 나. 남과 북 그리고 교민사회의 동질선 회복과 이를 단서로 민족공동체, 민족공영 운영의 단서로 활용한다. 다. 우리문화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마. 우리 스스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 않고는, 판소리와 같이 세계 가치 있 는 인류 구전문화 유산으로 등재 요청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 한(韓)민족 동질성(DNA)과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노래로, 민족 구성원 모두가 ‘민족의 노래’로 꼽는, 세계 유래 없는 노래임으로 그 위상을 제도로 확립시킨다. 이를 세계 유네스코가 인정, ‘세계 가치 있는 인류 구비문화 유산’의 상징어로 인정-(ARIRANG PRIZE)을 제정하였다. 2) 지정 방법 가. 전통성과 기층성, 그리고 전승체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강원도권·서 울권·경상도권·전라권을 주로 하고, 병행하여 를 통해 교민사회·북 한·창작아리랑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포괄 지정한다. 나. 지정에 따른 예능보유자는 지정하지 않고, ‘전수회’ 또는 ‘보존회’를 통해서 전수·연구업무를 담당케 한다. 다. 기 지정 지역, 정선(강원도 무형문화제 1호 지정) 지역 5인, 중원(충북 농요로 지정)4인의 보유자는 일정 기간만 유지 하고, 강릉(‘학산오독떼기’의 한 종목- 동기달 외3인)은 아라리를 분리하여 권역에 포함시킨다. 3)지정 지역 대상 가. 강원도아리랑 정선권(정선·영월·평창·태백(‘아라레이’)·횡성‘어러리’) 강릉권(강릉‘자즌아라리’)·인제 ‘인제 뗏목아리랑’)·춘천 ‘춘천의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경기·충청권(충북 ‘중원아라성’·여주·이천) 나. 서울아리랑 본조아리랑 긴아리랑 구아리랑 해주아리랑 다. 경상도아리랑 상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영천·경상도아리랑 울릉도아리랑(김재조) 라. 전라도아리랑 진도아리랑(의신면 돈지리마을 강송대· 박병훈) 제주조천아리랑(조을선 작고·기능자 미확인) 마. 창작아리랑(지속적인 관찰 대상지역) 제천아리랑(‘의병아리랑’ 2000년 공연) 대전아리랑(2002년 음반화) 대구아리랑(2003년 음반화) 바. 북한지역권 삼일포아리랑 통천아리랑 서도아리랑 초동아리랑 창작아리랑-아리랑연곡·경상도·영천 아리랑·통일아리랑·유일팀아리랑·강 성부흥아리랑 등 10여종 사. 해외 교민사회권 일본 오사카지역(김경원) 중국 (박창묵) 미국 L·A(김혜란) 러시아 연해주 ※ 지면 관계상 의 주 업무와 참고 사항 등은 다음 신문에 게제 하겠습니다.
-
강원의병아리랑 서울콘서트, 아리랑의병 활동‘20강원의병아리랑 서울콘서트’가 서울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우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아리랑 공연행사로서 서울시 공식적 첫 야외공연이다.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기연옥 회장)가 주최/주관했다. 첫 무대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의병에 대한 의례와 추모를 주제로 했고, 두 번째 무대는 강원지역 토속민요와 다양한 아라리를 실연으로 펼쳤다. 마지막 무대는 제주아리랑보존회 양주아리랑보존회가 특별출연하여 의병과 아리랑, 강원도와 아리랑, 그리고 8도아리랑의 다양함을 선보였다. 해설은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가 맡았다.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행사가 되길 바란다는 강원도 최문순 도지사의 축사를 전하면서 행사시작을 열었고, 의병아리랑에 담고 있는 저항정신, 즉 백성들이 외세의 억압에 대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투쟁하는 의병정신이 현재는 코로나19라는 외적을 이기려는 시민들의 연대정신을 의병정신으로 승화시키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천민에서 왕족까지 전 계층이 봉기하여 나라의 주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과 애국정신을 본받자고 행사의 의의를 부연했다. 이어 일제항쟁기 강원도 가평에서 정미의병을 취재한 영국 메켄지 기자가 남긴 사진 한 장을 소개하고, 이 사진 속에서 영롱한 눈빛을 뿜어내는 어린 의병들이 농기구를 들고 총을 든 일본군에 죽음을 무릎쓰고 맞서면서 "살아서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 죽겠다”는 어린 의병들의 굳은 의지를 그는 세계만방에 전했다라고 소리 높여 강조했다. 오늘 공연의 서막은 이러한 의병정신을 소극 ‘함성. 춘천의병아리랑’ 무대에 투영하여 하늘을 향해 호국영령들께 뜨거운 보훈이 담긴 함성을 힘차게 올렸다. 이 무대는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경복궁아리랑 고유제 무대에서 선정작으로 뽑힌 작품이다. 관중석 시민들도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답해 주었다. 함성! 춘천의병아리랑 구한말 나라가 외세에 의해 위급에 처해 있을 때 전라도에서는 기우만과 기삼연, 경상도에서는 이강연, 강원도에서는 유인석 의병장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떨쳐 일어나 항일 투쟁을 했고, 특히 강원도 춘천의 여성의병장 윤희순은 안사람의병가를 지어 여자와 청년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문서로 전해지는 의병들이 불렀던 아리랑은 문경과 함께 춘천에 전해지고 있다. 오늘의 공연은 전라도 기우만 의병장의 직손인 기연옥 명창이 중심이 된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의 공연이다. 소극 ‘함성! 춘천의병아리랑’에서 불린 춘천의병아리랑 사설은 다음과 같다. 의병 후손 기연옥 명창, 그리고 의병아리랑 기연옥 회장은 춘천의병아리랑과 안사람의병아리랑. 춘천아라리의 중심인물로서 열연을 펼쳤다. 기회장은 기우만, 기삼연, 기산도 의병장의 가맥을 잇는 후손으로서 집안에서 전해지는 춘천의병아리랑을 강원도민에게 전하기 위해 2015년부터 강원도와 전국, 러시아 중국 등지 독립유적지에서 의병아리랑콘서트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기회장은 "오늘 공연은 매년 이루어지는 강원아리랑콘서트 순회공연인데 서울 지역을 첫 번째로 정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이어 3번째 이어지는 서울 행사이다. 코로나19사태로 심신이 힘든 시민들을 위무해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우만 의병 가문에서 태어난 기회장은 의병정신을 이어받아 전국 의병아리랑유적지를 찾아서 의병가를 찾고. 학계와 시민들. 특히 해외동포들에게 의병아리랑 음반을 무상보급 해오고 있다. 매년 한겨레아리랑연합회와 사할린주한인협회가 개최하는 '한민족공동체실현을 위한 사할린 아리랑제'에서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가 의병아리랑을 알리고 있다. 의병정신과 의병아리랑은? 공연에 참석한 전 한러문화교류협회 기연수 회장은 의병정신을 고취시키는 이 공연의 의의에 대해 "의병이란 의로운 군대를 말한다. 나라가 위급할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군인이다.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의병의 역사는 길이 길이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함께 자리를 한 기우만 의병장 가문의 기종도 회장은 "코로나19 전염병 극복을 위해 아무 조건없이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들은 바로 이 시대 의로운 의병들이다. 오늘 공연의 취지라고 본다. 돌아가서 장성 시민들에서 의병아리랑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춘천에서 함께 올라온 윤희순의사기념사업회 김진선회장은 "안사람의병아리랑을 통해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 의사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려 후손들에게 나라와 국가를 지키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특별출연으로 제주아리랑을 부른 제주아리랑보존회 강소빈 회장은 "제주에서 올라오면서 전날 뉴스에는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하늘에서 의병이 나리셔서 햇볕이 짱장한 날 시민들과 공연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 라고 훈훈한 마음을 전했다. 한편 남양주아리랑보존회 송규철 회장은 남양주아리랑을 부르고 일제항쟁기 중국에서 독립군가로 불렀던 북간도아리랑을 재현했다. 그는 "빨리 코로나19사태가 안정되어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지켜본 서울아리랑보존회 유명옥 이사장은 "남인사마당 무대가 코로나 이후 처음 접하는 공연이고 야외공연이지만 오늘은 관객이 대체로 진지했다. 인사동에 나온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대이고 일제 강점기 아리랑은 마마아리랑이라고 천연두 전염병을 잡는 부적으로 주고받았다. 특히 의병아리랑은 더 힘이 쎄다. 우리도 이 야외무대에서 6월 25일 서울아리랑을 부른다”라고 손을 높이 쳐들었다.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
- 2제6회 시흥갯골국악대제전(06/22)
- 3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대상에 이소영씨
- 4‘2024 광무대 전통상설공연’
- 5국립남도국악원, 불교 의례의 극치 '영산재', 특별공연
- 6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5)<br>한국 최초 '도깨비 학회', 아·태 도깨비 초대하다
- 7제3회 대구풍물큰잔치 ,19일 디아크문화관광장
- 8아리랑 사이트 운영자 정창관 선생 따님 시집 보내는 날
- 9국립극장 마당놀이 10주년…“새로운 얼굴 찾아요”
- 10이무성 화백의 춤새(91)<br> 춤꾼 한지윤의 '전통굿거리춤' 춤사위